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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FACE] <모차르트 오페라 락> 박한근 [No.103]

글 |김영주 사진 |심주호 2012-04-16 5,711

 

나는 누구일까요?

 

대구에서 먼저 막을 올린 뮤지컬 <모차르트 오페라 락>에 대한 반응이 어떤지 궁금한 마음에 반응을 찾아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대체 박한근이 누구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주인공 모차르트 역에 발탁된 세 명의 배우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인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낯선 이름 세 글자를 검색했을 때 뜨는 정보들은 종잡을 수 없이 흩어져 있다. 2003년에 데뷔 앨범을 내고 가수로 활동했고 드라마 O.S.T에도 참여를 했으니 가수인가보다 하려고 보면 이미 2007년에 소극장 뮤지컬 <찰리 브라운>에 출연한 경험이 있다. 그럼 노래를 잘해서 뮤지컬을 하게 됐나보다 생각을 하려고 보니 또 그것만도 아니란다. 그는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사람이다.


 

 

대체 박한근이 누구냐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해달라고 요구하자 뒤늦게 빛을 보고 있는 신인 아닌 신인은 쑥스럽게 웃으면서도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저는 작품을 많이 하지는 않았어도 꾸준히 연극, 뮤지컬, 그리고 가수 활동도 하면서 플레이어로서 계속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고요. 그러다가 좋은 작품의 오디션에서 정말로 좋은 역할을 맡게 돼서 다시없을 일확천금 같은 감사한 기회를 잡게 된 사람이죠.”


지난해 6월, 오랜만의 국내 무대에 오를 대형 신작 프랑스 뮤지컬의 주인공을 뽑는 오디션에 쏠린 관심사 중 하나는 전통대로 이번에도 좋은 신인이 발굴될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 <로미오 앤 줄리엣> 등의 작품을 통해 무명의 신인에서 유망주로 급부상한 배우들처럼 또 한 사람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 속에서 치러진 오디션에서 그는 뭘 보여주어야 할지 확실히 마음을 정한 후보자였다. “원작자들이 오셔서 오디션 심사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호불호가 어떤지를 모르는 상태였어요. 어쨌든 나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어야 한다고 각오를 하고 있었죠. 저는 오디션이라는 건 결국 내 본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먹혔던 것 같아요. 확실히 보여주려고 했던 건, 노래에 자신이 있다는 것. <모차르트 오페라 락>의 넘버들이 정말 어려워요. 진성과 가성을 왔다 갔다 해야 하고 음역대도 높고요. 그런데 저는 그 노래를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걸 어필했어요. 그리고 노래도 결국 ‘노래로 하는 연기’인데 저는 그 연기도 보여줄 수 있다고요. 마지막으로 우스갯소리로, ‘모차르트도 키가 크지 않았는데 저도 그래요. 그리고 이 정도면 외모도 좀 닮지 않았나요?’ 그런 이야기를 했죠.(웃음)”


그는 불세출의 천재 모차르트가 한 인간으로 느끼는 고통과 고독에 대해 극 중의 모든 상황에서 생생하게 보여주려고 한다. 모차르트에 관한 책과 영상 자료들을 구해 보면서 그의 삶을 세심하게 추적하기도 했지만, 사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모차르트가 어떻게 살았는가보다는, 그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박한근은 알로이지아와 콘스탄체라는 두 여인에 대한 사랑, 아버지와 누나에 대한 가족애, 그리고 살리에리와의 애증 섞인 동료애까지, 다양한 색깔의 사랑을 극 중에서 경험하면서 매 공연마다 조금씩 다른 것들을 찾아가고 있다. “천방지축이고 자유분방한 사람이 시대의 감옥 안에 갇혀 살면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뛰쳐나가려는 에너지가 있잖아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아픔들까지 다 보여드리고 싶어요. 아니, 감히 보여드리고 싶다 이런 게 아니고요. 다시 무대에서 깨닫고 느끼고 싶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지금도 막 무대에 서서 공연을 하고 싶어요.”


무대에서 연기를 할 때 자신이 모차르트가 되어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역할과 자기 자신 사이에 거리를 두고 연기를 하느냐고 묻자 한참을 고민하더니 자신이 그 두 가지가 다르지만 같은 것 같다고 고백한다. 다른 시대, 다른 세상을 사는 박한근과 모차르트라는 극 중 인물이 만났을 때,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것이 연기인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원래 학교에서 연기를 배웠어요. 그런데 그때도 이미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어요. 선배들이 항상 말하기를, ‘한 가지에 집중을 해라, 네가 가진 게 100인데 두 가지를 하려면 둘 다 50밖에 못하지 않냐’고 했죠. 그런데 저는 도저히 어느 쪽도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제가 가진 게 100이라면, 두 가지 일에 각각 100을 다 할 수 있다고, 몸이 부서져도 꼭 해내겠다고 다짐했죠.”

 


멋모르던 어린 시절의 그 다짐대로 살아오면서 어느덧 서른 즈음이 된 박한근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서 긍정을 한다.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고 돈을 많이 버는 게 성공의 척도라면 저는 아직 거기까지 가지 못했어요. 하지만 내가 원한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해왔어요. 가수로, 배우로, 또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 강의도 많이 했고요. 지금은 대학원도 다니고 있어요. 저는 언제가 됐든 원하는 일들을 다 하면서 살 거예요.” 재미가 없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말 자체로만 보면 어린아이의 고집처럼 들리기도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아이 같다기보다는 단호해 보인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모두 흡족한 결과를 얻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시간이었다. 그는 힘든 것과 재미가 없는 일은 다르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은 힘든 것도 재미있는 일들이죠.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잖아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상황이 어떻게 돼도 ‘난 안 그만둘 건데? 끝까지 한 번 가보자고’ 그런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죠. 좀 그런 이야기지만, 배우로든 가수로든 크게 성공을 거두거나 이름을 많이 알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일 수가 있죠.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어요.”


지금 그에게 가장 재미있는 일인 <모차르트 오페라 락>이지만 쉴 새 없이 몰아쳐야 하는 1막이 끝날 때쯤에는 체력적으로 탈진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중간 휴식을 위해 대기실에 들어갈 때마다 그는 같은 사람을 찾는데, 의외로 숙적 살리에리다. 2막에서 비중이 큰 살리에리 역의 배우에게 가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2막을 부탁해’라고 말하고 털썩 주저앉는 게 매 공연 때마다의 일이다. “저와 살리에리가 극 중에서 대비되는 인물이지만 모차르트에게 살리에리는 대립하는 존재라고만 보지 않아요. 어린 모차르트의 입장에서 살리에리는 인정을 받고 싶은 상대이기도 하거든요. 첫 공연을 할 때 제가 정말 긴장이 돼서 실수도 좀 있고 힘들었는데 2막 때 무대에 나온 (강)태을 형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형한테 그랬어요. ‘이야, 당신 보니까 내가 편해지데.’(웃음) 정말 의지가 돼요. 그리고 난넬 역의 홍륜희 배우. 누나에게는 제가 늘 고맙다고 해요. 극 중에서 제가 배우로서 흔들릴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륜희 누나가 부르는 난넬의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다 정리가 돼요. 그래서 공연 끝나고 나면 ‘누나 때문에 내가 다시 자리를 찾았네’ 그렇게 인사를 해요. 모든 배우들이 다 그래요.”


첫 공연부터 합숙을 한 대구에서의 경험이 최고의 팀워크를 선물해줬고, 이제 성남에서 다시 공연을 시작한다. 무대에서 잘못 넘어져서 금이 간 갈비뼈 때문에 치료를 하고 휴식을 취하면서도 박한근은 내내 무대에 서고 싶어서 애가 탄다. 그 갈증마저 지금의 그에게는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조금 늦게 그에게로 움직였지만 그는 지금부터 많은 것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03호 2012년 4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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