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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CULTURE INTERVIEW] 리버틴스 Carl Bart, 슬픈 낭만주의자 [No.189]

글 |배경희 사진 |표기식 2019-06-28 3,294

리버틴스 Carl Bart, 슬픈 낭만주의자  

 

지구 반대편의 팬이 제안한 공연 요청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처음 만난 팬들과 함께 즉흥적으로 무료 뒤풀이 공연을 하는 록 스타가 있다면 믿겠는가. 심지어 이 록 스타가 해외 각종 뮤직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서는 밴드의 프런트맨이라면? 가장 낭만적인 로큰롤 비극의 히어로, 영국 밴드 리버틴스. 바로 그 칼 바랏이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솔로 밴드로 첫 아시아 투어에 나선 것을 축하한다. 서울에서 투어 첫 공연을 마친 소감이 어떤가. 어젯밤 공연은 너무도 완벽했다. 사실 리허설 전만 해도 우리가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 팀 내부 사정으로 원래 투어 멤버 대신 새로운 기타 플레이어가 서울 공연에 참여하게 됐는데, 공연 이틀 전 합류가 결정돼서 잘못하면 재앙이 될 거란 불안감이 있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가 너무나 훌륭히 해낸 거다! 모든 곡이 잘 흘러갔고, 관객들은 행복해했다. 내가 공연의 성패를 판단하는 기준은 오직 ‘관객들이 행복해 하느냐’이다. 내 리액션은 항상 관객들로부터 나온다. 
 

공연을 끝낸 직후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뭐였나. 살았다! 위기를 모면했으니까. (웃음) 안도감 이후엔 행복감이 몰려왔다. 긴장을 풀려고 공연 중 술을 좀 마신 탓에 끝날 때쯤 약간 취한 상태이긴 했지만, 그냥,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난 평소에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살면서 쉽게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그렇지 않다. 타고난 성격이 그렇다.  
 

그럼 어젯밤 특별히 행복하다고 느끼게 해준 순간이 있을까? 관객들이 앙코르를 외치는 대신 ‘Shoop de-lang-a-langg’을 불러줬을 때, 그게 2층 대기실까지 크게 들렸다. 우리가 다시 등장했을 때 무대로 장미를 날려줬던 거나 ‘Bang Bang You're Dead’ 슬로건을 노래에 맞게 들어줬던 거, 그 순간들도 정말 좋았다. 뮤지컬배우(리버틴스의 음악을 바탕으로 하는 <보이즈 인 더 밴드>의 워크숍 공연에 참여했던 이휘종이 게스트로 출연했다)하고 함께 ‘Can't Stand Me Now’를 부른 것도 즐거웠고, 미리 외운 한국어를 말하는 것도 무척 재밌었다. 
 

당신이 공연 전 한국 팬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한국어를 얼마나 열심히 외웠는지 사람들이 알아야 할 텐데! (웃음) 이상한 질문처럼 들리겠지만, 왜 그렇게 팬들에게 다정한가. 내 말은, 리버틴스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인디 뮤지션처럼 행동하지 않나. 그게 너무 신기하다.  그야 팬들이 나한테 다정하니까. 만약 그들이 나에게 끔찍하게 군다면, 나 또한 ‘뻑큐!’를 날리며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거다. (웃음)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어떤 록 스타들은 성공 이후 태도가 달라진다.  유명해진다고 해서 그게 특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내 자신을 그렇게 느끼지도 않는다. 그리고 록 스타는 터무니없는 클리셰 같은 거다.
 

그럼 당신은 어떻게 불리길 바라는데? 글쎄, 뮤지션? 아티스트? 모르겠다. (웃음)


 

내 생각엔 사람들이 당신의 이런 격의 없는 태도에 감동하는 것 같다. 어젯밤 당신을 기다리던 팬들과 함께한 즉흥 애프터 파티만 하더라도 그렇다. 유명 외국 밴드가 작은 홍대 클럽에서 뒤풀이 공연을 한 건 아마 어제가 처음이었을 거다.  진짜?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해도 된다. 무슨 말이냐면, 카메라폰이 나오기 이전엔 모든 공연이 어떤 면으론 굉장히 개인적인 이벤트였다. 공연이 오직 관객 각자의 기억 속에만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요즘 같은 스마트폰 시대에는 뮤지션이 공연 중 실수를 하면 온 세상이 그걸 알게 된다. 심지어는 순간적으로 한 번만 멍청한 짓을 해도 그게 그 사람의 커리어를 끝장낼 수도 있다. 따라서 예전처럼 자유로울 수 없고, 항상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100퍼센트가 아닌 99.9퍼센트만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 

어떤 때는 SNS가 새장처럼 느껴지겠다. 모든 사람이 모든 걸 포스팅하니까. 맞다, 공연장에 가면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공연을 찍는다. 하지만 그들 중 그걸 다시 볼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내 생각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 볼 거다. 그런데 만약 내가 무대에서 넘어져서 ‘으아아악’ 하고 바닥에 얼굴을 찧는다면, 그건 SNS에 아주 빠르게 퍼져서 글로벌해질 거다. (웃음)
 

혹시 당혹감을 안겨줬던 포스팅도 있나? 난 벌을 무서워하는데, 예전에 런던에서 더티 프리티 씽으로 공연할 때 무대로 말벌이 날아든 적이 있다. 게다가 하필 ‘딥’한 곡을 부르고 있을 때라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결국 나도 모르게 ‘아아~’ 대신 ‘아-악’ 비명소리를 냈더니 누군가 그 장면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다. 아, 그 영상 지금은 없어졌다. 절대, 절대, 절대 찾아보려고 하지 말 것. 
 

어젯밤 관객의 절반이 이십 대였으니 당신은 또 많은 새로운 포스팅을 얻을 거다. (웃음) 당신은 나이를 먹어가지만, 

당신 노래는 나이 들지 않을 때, 그게 계속해서 젊은 세대를 사로잡을 때, 어떤 기분을 느끼나. 날 행복하게 하는, 멋진 이야기다. 나한테 그런 곡이 있다면 난 정말 운 좋은 사람일 테니까. 정말이지 그건 뮤지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로 멋진 일이다.
 

스스로 이런 걸 썼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곡은 뭔가. 딱 한 곡만 고른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Death On The Stairs’다. 그 노래는 언제나 ‘진짜’처럼 느껴진다. 가사가 다소 관념적인데…, 사실 난 이 곡에 대해 설명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물어봤으니까 이번에만 말해 주겠다. (웃음) ‘Death On The Stairs’는 희망과 절망 같은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곡이지만, 내 세계와 내 이야기, 그리고 내 영혼까지, 어떤 면에선 내 자신이 가장 많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엔 네가 이 노래로 영화를 만들거나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 입으로 천재적인 곡이라 하긴 그렇고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훔치고 싶을 만큼 탐나는 곡도 있나? 내가 썼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그런 곡. 좋은 질문인데, 흠, 지금 막 머릿속에 떠오른 노래가 하나 있다. 퀸의 ‘Don't Stop Me Now’. 아니면 ‘Good Old Fashioned Lover Boy’. 아니, 사실 퀸 노래 중 아무거라도 내가 쓴 게 있었으면 좋겠다. (웃음) 너바나의 ‘Serve The Servants’도 내 노래였으면 좋겠고. 


 

그런데 한국에 오기로 결정한 이유는 뭐였나. 솔직히 말해 돈이 되는 공연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내 생각엔 돈을 번 게 아니라 잃었다. (웃음) 하지만 괜찮다. 다음 도시에서 벌 거니까. 오기로 한 이유는 단순하다. 제안을 받았으니까! 네가 그러지 않았나. 분명 근사할 거라고. 그리고 난 항상 한국에 와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알고 있을지 몰랐다. 그런데 네가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들겠다고 했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단지 팬의 말이라서 믿었다는 건가? 그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었나? 물론 확신하진 못했다. 솔직히 네가 ‘크레이지’하다고 생각했고, 어쩌면 다 헛소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웃음) 근데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난 항상 내 직감을 믿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메일로 공연 제안을 받았을 때 내 마음이 본능적으로 이 일은 믿어도 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배우들이 부른 뮤지컬 버전 ‘What Became Of The Likely Lads’ 영상을 봤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래전 영상 인터뷰에서 리버틴스 음악으로 뮤지컬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하는 걸 본 적 있다. 그런데 그 후로 아무런 이야기가 없더라.  맞다, 예전에 한번 우리 이야기로 뮤지컬을 만들어보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아직 안 만들어진 이유는 우리가 그러려고 했단 사실을 까먹어 버렸기 때문이다. 생각만 하고 한 번도 펜을 들지 않았다! 말하자면 뮤지컬은 5분짜리 아이디어였고, 그 후로 완전히 잊어버렸다. (웃음) 
 

원래 뮤지컬을 좋아했던 건가.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나. <록키 호러 픽쳐 쇼>. 그 작품의 모든 대사를 다 알고 있다. 어린 시절 자주 머물렀던 히피 커뮤니티(그의 엄마는 히피였다고 알려져 있다)에 세 개의 비디오테이프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록키 호러 픽쳐 쇼>였다. 누나랑 둘이 그걸 보고, 또 보고, 또 봤다. 왜냐면 노래가 정말 좋지 않나. 사랑합니다, 팀 커리. (웃음) 등장인물처럼 옷을 꾸며 입고 공연을 보러 간 적은 없지만, 오리지널 공연 포스터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리버틴스 뮤지컬을 만들 거란 소식을 들었을 땐 어땠나. 인크레더블! 처음엔 약간 헛소리 같기도 했다. 왜냐면 상상조차 못한 일이니까. 한국에서 리버틴스 뮤지컬이 만들어진다면, 아마 우리한테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없을 거다. 우리 이야기는 정신적인 요소가 강하지 않나. 만약 영국식 러브 스토리가 한국어로 옮겨질 수 있다면, 그건 대단히 아름답고 멋질 거다.
 

훗날 당신을 연기하게 될 배우에게 조언을 좀 해준다면? 글쎄, 우리를 연기하려면 일단 ‘사랑’과 ‘필’이 중요하고, 자기 자신을 오픈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약간의 방탕함도 필요할 테고. (웃음) 사실 난 객관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내 캐릭터에서 뭐가 중요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언을 해주자면, 배우로서 자기 일을 해라! 이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당신이 기억하는 의미 있는 사건으로 힌트를 달라. 아무래도 리버틴스의 재결합 무대였던 2014년 하이드 파크 공연이 밴드로선 의미 있는 사건이겠지. 커리어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한테 소중하게 남은 순간은 좀 더 개인적이다. 젊은 날 피트와 함께 꿈꿨던 시절들, 말하자면, 옥상에 앉아 앞으로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대화를 나누었던 사소한 순간들이 내게 훨씬 더 의미가 있다.
 

예전 인터뷰에서 당신 자신을 프로메테우스에 비유해 말한 적이 있는데 기억하나. 쇠사슬로 바위에 묶인 채 매일 낮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지만, 밤이면 다시 멀쩡해지기 때문에 독수리를 기다리고 또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그런 말을 했었다. 여기서 독수리는 당연히 피트 도허티겠지? (웃음) 내가 그런 말을 했나? 기억이 안 난다. 근데 무슨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는지 알 것 같다.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고통, 그게 피트와 함께한 내 인생 스토리니까.
 

슬픈 이야기를 이렇게 로맨틱하게 표현하다니. 당신 같은 낭만주의자는 또 없을 거다.  영국에서는 원래 무언가 끔찍한 이야기를 할 때 사랑을 담아서 말한다. (웃음)
 

아, 둘이서 하나의 마이크를 나눠 쓰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가. 당신을 만나면 이 질문을 꼭 하고 싶었다. 처음에 우리에게 주어진 마이크가 하나뿐이었다. 이제 막 시작한 밴드는 어딜 가나 많은 마이크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둘 다 서로 ‘싱어’가 되길 원했기 때문에 하나로 같이 부르게 된 거다. 이렇게 여전히 나눠 쓸 줄은 몰랐지만. (웃음) 
 

앞날이 창창한 뮤지션이 당신을 찾아와 조언을 해달라고 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누구보다 거칠고 불안한 청춘을 보낸 사람으로서 말이다. 만약 과거로 돌아가서 내 자신을 만날 수 있다면, 그 아이에게 해줄 말은 오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다. 걱정은 일종의 전염병 같아서 하면 할수록 더 크게 퍼질 뿐이란 걸 그땐 몰랐다. 물론 걱정을 멈추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아!’ 하고 모든 걱정이 쓸데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 그러니까 절대로 네 자신을 의심하지 말아라. 그리고 좀 더 대담해질 것. 넌 너보다 앞선 인생을 살아간 다른 사람들처럼, 또 네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처럼, 네 삶을 누릴 자격이 있다.


 

당신을 여전히 두렵게 하는 게 있다면 그건 뭘까. 말벌들! 우리의 다음 도착지인 일본의 벌도 무섭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웃음) 음, 두려운 거라, 넌 어떤가. 뭐가 두렵나?
 

글쎄, 그런데 내 이야기로 예를 들기엔 당신과 나는 상황이 너무 다르지 않나. 아니, 우린 전혀 다를 게 없다. 너도, 나도, 같은 사람이니까.
 

그럼 질문을 바꿔서, 당신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쓰일 아름다운 노래들이 남아 있고, 완성돼야 하는 아름다운 예술들이 존재한다는 것. 이는 결코 변하지 않을 사실이고, 이 사실이 나를 항상 격려한다. 그리고 나의 가족과 친구들. 만약 가족과 친구들이 없다면, 음악을 해야 할 이유도 없을 거다.
 

당신, 여전히 아르카디아를 믿나? 물론. 아르카디아는 희망이니까. 매일 한곳으로 날아가는 화살처럼, 내 인생이 향하는 방향은 언제나 아르카디아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9호 2019년 6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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