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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음성과 자막 해설이 있는 공연, 영국의 장애 관객 친화 서비스 [No.187]

글 |조연경 런던 통신원 사진제공 |National Theater 2019-04-20 5,273

포용적 공연 예술의 필요성

 

‘4월’ 하면 어떤 기념일 먼저 떠오르는가. 식목일? 임시정부 수립일? 4·19 혁명 기념일?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기념일은 여기까지일 것이다. 하지만 4월에는 하나의 기념일이 더 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말이다. 국내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장애인 관객을 위한 최대 배려인 휠체어석 이용조차 쉽지 않은 상황에서 장애 관객을 위한 관람 문화가 형성되는 일은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포용적 공연 예술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우리도 인식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음성과 자막 해설이 있는 공연, 영국의 장애 관객 친화 서비스

 

트위터에서 해시태그 #AccessDay #Accessperformance 등을 검색해 보면 영국의 극장들이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위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알 수 있다. 이 같은 서비스는 보통 극장 공식 웹사이트에 ‘ACCESS’라는 메뉴에 상세히 나와 있다. 다시 말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영국 극장에서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 제공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한가지 더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관객이 그 일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 몸이 불편해질 수 있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문화 시민의 기본 자세 아닐까.

 

 

영국의 문화 예술 정책은 ‘누구나 공평하게 문화 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조로 다양성(Diversity)을 강조한다. 문화계 전반에 걸쳐 다양성에 대한 실태 조사와 연구가 지속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지원을 받는 주요 문화 예술 기관은 그 사실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다양성은 접근성(Accessibility)과 맞닿아 있다.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소수자인 비백인 창작자의 활동을 독려하는 것과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국립 극장의 공연을 비수도권 관객도 즐길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의 맥락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다양성의 맥락 안에는 당연히, 장애인의 접근권에 대한 논의도 포함된다. 

생각해 보면, 티켓을 구매해 해당 날에 직접 극장에 가야 하고, 객석이 어두워지면 한 시간 이상 소리 없이 조용히 버텨야 하는 공연 관람 행위에는 넘어야 하는 허들이 많다. 비장애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간 소외되어 있던 관객층을 극장에 유입시키는 측면에서 접근권 문제가 다뤄지기도 한다. 최근에 영국의 기관들은 휠체어 이용객이 객석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는 정도를 넘어, 장애인과 노약자에게 더 많은 선택지가 부여될 수 있도록 더 적극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제공하고 있다. 

 

음성 해설 공연과 촉각 투어

Audio-described 

performances & Touch Tour
 

시각 장애나 약시가 있는 관객들이 공연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공연 전에 무대 위로 초대하는 일을 촉각 투어라고 한다. 이는 음성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미리 대도구, 의상, 소품 등을 만져보면서 작품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배우와 음성 해설사의 목소리에도 익숙해지도록 돕는다. 공연 정보를 담은 시즌 프로그램북은 큰 글자로 인쇄한 것, 점자로 인쇄한 것, 오디오북으로 녹음한 것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해 편의에 따라 택할 수 있다. 이런 준비 과정을 거친 관객은 극장에서 제공하는 헤드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되는 음성 해설을 들으며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음성 해설은 장면과 대사에 대한 설명을 포함한다. 국공립 극장의 경우 보통 공연 기간 중 2회가량 음성 해설 공연을 진행하는데, 이때에 음성 해설 보급에 힘쓰는 기업 보컬아이스(Vocaleyes)가 협력한다.

 

자막 해설 공연과 수화 공연 

Captioned performances 

& Signed Performances
 

청각 장애가 있는 관객은 배우의 대사뿐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소리를 자막으로 표기해 보여주는 자막 해설 공연을 선택할 수 있다. 국공립 극장은 전체 공연 기간 중 2~3회가량 자막 해설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때때로 웨스트엔드 등에서도 자막 해설 공연 전문 기업인 스테이지텍스트(Stagetext)의 협력으로 해설 공연을 하기도 한다. 수화 공연은 상대적으로 드물지만, 유명 뮤지컬의 수화 통역에 힘쓰는 시어터사인(Theatresign)이 사례를 늘리는 중이다. 

 

릴렉스 퍼포먼스 

Relaxed performances
 

자폐 스펙트럼에 있는 관객뿐 아니라, 학습 장애로 인해 어두운 곳에 오래 앉아 있기 어렵거나 감각이 예민한 관객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공연이다. 객석이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게 등을 밝힌 채 공연을 진행하며, 관객이 공연 중에 소리를 지르거나 자유롭게 드나들어도 괜찮다. 소리를 줄이고 조명을 부드럽게 하는 등 강한 자극이 되지 않도록 조절한다. 릴렉스 퍼포먼스도 전국적으로 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내셔널 시어터에서는 연극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때 이 같은 공연을 마련한 적이 있고 당시 아동을 동반한 보호자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스마트 캡션 안경 

Smart Caption Glasses


 

내셔널 시어터가 협력 기업인 액센추어, 엡손, 스테이지텍스트와 함께 개발한 스마트 캡션 안경은 장애인의 공연 접근권에 또 다른 지평을 열어줬다. 구상부터 개발, 상용화까지 4년 정도 걸렸다는 이 장비는 배우의 목소리, 조명과 음향 큐를 ‘듣고’ 자동으로 타임 코드를 생성한 후 준비된 자막을 와이파이를 통해 사용자에게 전송한다. 각 안경에 자막이 시간 맞춰 나타나기 때문에 관객은 화면과 무대를 번갈아 보지 않아도 된다. 웃음 타이밍이 어긋날 걱정도 없다. 자막을 보면서도 배우의 표정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발전이다. 무엇보다 이 안경으로 인해 관객의 선택권이 넓어졌다. 특정 회차에 국한되지 않고 언제든, 어느 자리에서든 관람할 수 있게 됐다. 스마트 캡션 안경 도입 이후 자막 제공이 가능한 공연은 5퍼센트에서 80퍼센트로 늘었고, 신규 관객도 유입됐다. 내셔널 시어터는 현재 90개가량의 안경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계속 진행하는 중이며 다른 극장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으니 전망이 밝다. 향후 외국인 관객을 위한 번역 자막에 이용하는 등 사용 범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내셔널 시어터를 비롯한 일부 극장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관객이 손쉽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회원 등록을 권유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서비스 외에도 관객 희망에 따라 안내견이 객석에서 함께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한다. 안내견에게 자극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미리 알려준다. 필요시에는 공연 동안 안내원이 안내견을 밖에서 따로 돌봐줄 수도 있다. 극장 건물에는 휠체어 이용객을 위한 자동문 시스템이나 경사로가 보편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역사가 오래된 극장은 계단과 기둥이 많고 복도가 좁음에도 휠체어 이용객의 불편이 없도록 이동 동선을 마련해 둔다. 이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극장을 위해 보수 비용을 지원해 주는 재단도 있다. 장애 예술 극단 그라이아이(Graeae)는 일선 극장들에 장애인 접근권 컨설팅을 해준다.

이렇듯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지만 영국 내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몇 년 전, 보컬아이스가 진행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각 장애가 있는 관객에게 친화적인 극장은 전체의 40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극장의 온라인 시스템이 미비한 탓에 휠체어석을 구매하려면 전화 거는데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게 부당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접근성 좋은 웹사이트 환경을 조성하고 온라인 예매 시 모든 서비스를 선택 가능하게 구축해 둔 내셔널 시어터가 그나마 모범 사례다. 수십 년째 장애인의 접근권에 대한 의식을 환기시키려 여러 기관이 다층적으로 노력해서 이만큼이나 온 것 같은데도, 영국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하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 참고 사이트 :

www.nationaltheatre.org.uk/your-visit/access/

www.oldvictheatre.com/your-visit/access

www.youngvic.org/visit-us/access-for-all

www.stagetext.org

www.theatresign.com

vocaleyes.co.uk

graeae.org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7호 2019년 4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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