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늘 새롭게 다가오는 고전의 매력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대중들에게도 익숙해서 누구나 아는 듯하지만 실제 <오이디푸스>를 읽었거나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구나 알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연극 <오이디푸스>가 황정민 주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소포클레스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중 비극의 형식을 완성한 작가로 평가된다.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 생애로 치면 중기에 해당하며 그의 빼어난 극작술이 최고조에 이른 작품이다. 고대 그리스 연극은 오늘날의 연극과는 많이 달랐다. 디오니소스 축제의 일환으로 야외무대에서 펼쳐졌던 그리스 연극은 배우 2~3명이 모든 배역을 연기하고 극 중 신하나 시민 중 무리로 등장해 상황을 설명하거나 인물의 심정을 토로하는 코러스의 비중이 컸다. 아이스퀼로스가 배우를 두 명 등장시켜 대화를 나누는 극적 상황을 만들었는데 소포클레스는 처음으로 배우를 세 명으로 늘려 대화 장면의 비중을 높였다. 코러스는 시대에 따라 달랐는데 소포클레스는 13~15명의 코러스를 등장시켰다. 이번 <오이디푸스>에서도 박은석이 맡은 코러스장을 통해 오이디푸스의 시각에서 때로는 전지적 작가적인 시각으로 오이디푸스의 내적 고통을 전해 준다.
<오이디푸스>는 기원전 425년에 공연된 것으로 추정된다. 공연된 지 약 2,500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오이디푸스>의 플롯과 극작술은 현대 작품들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다.
테바이의 라이오스 왕과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게 된다. 라이오스 왕은 신탁을 피하기 위해 어린 자식을 발목에 고리를 매어 산속에 버린다. 이를 불쌍히 여긴 양치기에게 목숨을 구한 후 이웃 나라 코린토스에서 폴뤼보스 왕의 양자로 길러진다. 이를 모르는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에서도 같은 신탁을 듣게 되자 저주를 피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원기왕성한 오이디푸스는 삼거리에서 마차를 탄 일행과 다투다 그들을 죽인다. 그는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어 테바이를 재앙에서 구하고 왕으로 추대된다. 그는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두 아들과 두 딸을 얻게 된다. 시간이 흘러 다시 테바이에 전염병이 돌고 재앙이 엄습해 온다. 신탁은 라이오스 왕을 죽인 자를 벌해야만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작품의 전사(前事)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에 닥친 재앙을 해결하기 위해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찾아가면서 오이디푸스의 존재를 밝혀간다. <오이디푸스>는 관객들의 호기심과 긴장을 주는 수사물의 구조를 취한다. 일반적인 수사물은 범인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흥미를 주지만, 이 작품에서 관객들은 라이오스를 죽인 자가 오이디푸스 자신이라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오이디푸스만이 그것을 모른 채 비극에 다가가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왕의 죽음에 대한 조사를 ‘마치 내 아버지의 일인 양’ 임하겠다”고 다짐하고 신들을 향해 살인자에게 끔찍한 저주를 내려달라고 청원한다. 진실을 발설하지 않으려는 테이레시아스를 추궁하고 힐난하여 결국 진실을 말하게 만든다. 거기서 멈추라는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말을 듣지 않아 그녀가 끔직한 최후를 목격하게 된다. 이오카스테는 라이오스 왕이 길거리에서 도적들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나, 코린토스의 왕이 자연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예언이 벗어났다며 신들을 조롱하지만, 그 어긋난 신탁이 오히려 더 강력하게 오이디푸스가 라이오스 왕을 죽인 범인이라는 증거가 된다. 눈 먼 테이레시아스가 진실을 가장 정확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나, ‘부풀어 오른 발’이라는 뜻을 지닌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이 이미 그가 라이오스 왕의 자식임을 암시하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극의 여러 층위에서 의미를 더한다.
사건을 긴장감 있게 풀어가는 극작술이 뛰어나고, 비록 신들의 예언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은 아이스퀄로스의 희곡과 동일하면서도 소포클레스의 작품이 당시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등장인물의 심리적인 동기를 세심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주제 면에서도 신의 예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비극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다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을 낳게 된다는, 인간으로는 견디기 힘든 사실을 알게 되지만 진실을 알아내기 위한 행위를 멈추지 않고, 그 진실을 알고 나서는 눈을 찔러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벌한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그의 성급한 성격과 자만 때문에 발생했다. 합당한 조언을 한 크레온을 테이레시아스와 한패라고 의심하고, 그에 앞서 삼거리에서 가벼운 다툼을 살인으로까지 확장시킨다.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어 테바이의 영웅이 되지만, 가장 현명한 자라는 오만한 생각이 라이오스 왕의 살해범을 끝끝내 찾아내게 한다. 흔히 비극의 원인을 오이디푸스의 결함(하마르티아 hamartia)에서 찾는데 때로는 이 비극의 책임에서 오이디푸스에게 면죄부를 주는 시각도 있다. 오이디푸스의 저주는 젊은 시절 라이오스 왕이 저지른 반인륜적인 행동 때문이다. 라이오스는 왕권의 다툼으로 잠시 펠롭시에게 의탁한 적이 있는데 펠롭시의 잘생긴 아들을 테바이로 데려와 겁탈한다. 이런 행동에 신들이 ‘자식을 영원히 못 가질 것이며 만약 자식을 얻는다면 그에게 죽음을 당할 것이다’는 저주를 내린다. 게다가 오이디푸스는 다툼을 일으킨 마차 일행이 누군지 알지 못했다. 테바이의 왕으로 추대된 것이나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은 것도 그가 원해서가 아니라 테바이의 시민들이 그에게 요청한 일이다. 소포클레스의 또 다른 작품, 딸 안티고네와 떠돌던 시기의 눈먼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다룬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는 오이디푸스를 따라다니는 오욕은 그가 행한 것이 아니라 그가 당한 것이라고 변호한다. 도덕적으로 그에게 죄가 없다고 판단한다.
이처럼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살필 수 있고 작품의 메시지 역시 열린 접근을 허용한다. 또한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각색되었다. 이번 공연에서 어떤 점을 강조하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볼 지점이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황정민이 출연한 연극 <리차드 3세>에 참여했던 서재형 연출과 한아름 작가가 함께한다. <리차드 3세>가 원작의 매력과 캐릭터를 유지하면서 지금의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각색한 것처럼 <오이디푸스> 역시 고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각색이 될 것이다. 모든 배역이 원 캐스팅으로 진행된다. 영화뿐만 아니라 무대에서도 탁월한 배우임을 증명한 황정민이 오이디푸스로 출연한다. <리차드 3세>에서 마가렛 왕비로 출연해 인상적인 비주얼과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내뿜은 소리꾼 정은혜가 이번 공연에서는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로 출연한다. 연극 무대에서 그녀의 변신이 기대된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5호 2019년 2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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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IDE THEATRE] <오이디푸스>, 늘 새롭게 다가오는 고전의 매력 [No.185]
글 |박병성 사진제공 |샘컴퍼니 2019-02-24 5,691sponsored adv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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