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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NOW IN LONDON]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시작과 끝 [No.181]

글 |남윤호 배우 사진 |남윤호 배우 2018-10-16 5,946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시작과 끝
Stratford-upon-Avon

 


 

WHAT’S PAST IS PROLOGUE ? 

『The Tempest』 Act 2 Scene 1 

이달은 ‘나우 인 런던’ 코너에서 조금 색다른 글을 써볼까 한다. 매달 공연을 관람한 후 리뷰 아닌 리뷰, 소개 아닌 소개를 써왔지만, 이번에는 장소에 비중을 더 많이 둔 일종의 여행 에세이를 써볼까 한다. 현재에 변함없이 최고의 극작가라 칭송받는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탄생한 작은 마을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이하 스트랫퍼드)에 대해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정확한 출생일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1564년 4월 26일 마을에 위치한 성 트리니티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기록상으로는 1585년까지 스트랫퍼드에 거주했던 것으로 나와 있지만, 여러 추정에 따르면 1580년대 런던으로 거처를 옮겨 극작가 겸 배우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스트랫퍼드는 영국 워릭셔 카운티에 위치한 마을로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146Km, 버밍엄에서 남동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이라는 이름은 옛 영어로부터 유래되었다. 그 의미를 하나씩 짚어보자면, 먼저 ‘스트랫(Strat)’은 라틴어인 스트라툼(Stratum)에서 유래되었으며, 영어로 스트리스, 즉 길을 뜻하는 단어이다. ‘퍼드(Ford)’는 걷거나 마차를 타고 건널 수 있는 여울을 일컫는 단어이고, ‘에이번(Avon)’은 켈틱어로 강을 뜻한다. 스트랫퍼드는 에이번 강이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기 때문에 여러 의미를 따져봤을 때, ‘강 위에 마을’ 정도의 의미를 가진 이름이 아닐까 싶다. 에이번 강은 ‘워릭셔 에이번’ 또는 ‘셰익스피어의 에이번’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영국 내에 에이번이라는 이름을 가진 강이 여러 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공업이 약간 이루어지던 작은 마을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셰익스피어로 인해 관광 도시로 자리 잡았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Hamlet』 Act 3 Scene 1

영국왕립연극학교(RADA)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늘 가보고 싶었고, 언젠가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곳이 셰익스피어가 나고 자랐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 바로 이곳, 스트랫퍼드다. 하지만 바쁜 학교 일정으로 계속해서 여행을 미루게 됐는데, 모든 공식 수업이 끝나고 졸업 공연 연습이 시작되기 전에 주어진 짧은 방학 기간에 드디어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 여행엔 나의 가족들도 동행하게 되어 더욱 뜻깊은 여행이 아닐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는 나에게 많은 의미가 있다. 어쩌면 난 태어나면서부터 셰익스피어를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공연하셨던 셰익스피어 공연들을 봤고, 서재에 쌓여 있는 아버지의 셰익스피어 대본들을 보면서 자랐으니, 현재 무대에 서고 있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읽고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첫 대학원 오디션을 준비하면서였다. 대학원에 합격하고 나서는 체계적인 수업을 받으면서 셰익스피어에 대해 본격적으로 흥미를 갖게 됐고, 그를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대학원 재학 시절 원어로 공연하며 실수를 하기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어로 공연하며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했으며, 여러 버전의 공연들을 관람하며 감탄하기도 했다. 아직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많이 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공부하고 싶은 배역들이 늘어가고 있다. 내게 역사 선생님이자 인생의 선생님이며, 풀리지 않는 숙제와 영원한 도전 같은 셰익스피어가 밟았을 땅과 만졌을 벽들, 보았을 풍경들, 그리고 그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스트랫퍼드에 발을 내딛는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설렘 그 자체였다. 



 

O, CALL BACK YESTERDAY, BID TIME RETURN ?

『Richard II』 Act 3 Scene 2

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방문했던 장소들과 그곳에서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해 관광객이 되어 이야기를 해보겠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기에 서둘러서 둘러본 감이 없지 않지만,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무척 열심히 돌아다녔다(물론 그럼에도 결국 보지 못한 부분들이 있지만). 가족들과 함께 방문한 거라 렌터카를 빌려 다녔지만, 스트랫퍼드는 런던에서 기차로 가면 약 2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차로 간다면 교통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2~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그렇게 큰 마을이 아니다 보니 대부분의 곳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조금 떨어져 있더라도 산책 삼아 영국의 시골길을 걷는 셈 치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물론 타운 센터에 투어 서비스 같은 프로그램들이 있으니 어렵지 않게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시간을 충분히 가지며 여유 있게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기에 단체 투어를 신청하진 않았지만,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어 이용해 봐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DAY 1. 여행 첫날은 오후 늦게 마을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미리 예매해 둔 RSC(로열셰익스피어극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러 시내로 나갔다. 셰익스피어의 탄생지에서 공연을 놓칠 순 없지 않은가! 이전에도 런던에서 RSC의 작품들을 보긴 했지만, RSC 전용 극장에서 공연을 꼭 보고 싶었던 터라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에 다른 곳은 둘러볼 수가 없어서 극장 근처 펍에서 간단히 식사를 마친 후 극장으로 향했다. RSC는 당연하게도 이 마을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단체이다. 이곳에서 RSC가 운영 중인 극장은 모두 세 개인데, 로열셰익스피어 시어터와 스완 시어터는 한 건물 안에 자리해 있고, 디 아더 플레이스 시어터는 나머지 두 극장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RSC는 시즌마다 서너 작품을 동시에 공연하며, 로열셰익스피어 시어터와 스완 시어터에서는 매일 다른 작품들이 공연된다. 디 아더 플레이스 시어터는 200석의 스튜디오 극장과 리허설 룸으로 이루어져 있고, 페스티벌 기간 중 작은 공연들이나 타 단체들에게 대관을 해주기도 한다. 내가 도착한 날은 로열셰익스피어 시어터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공연되는 날이어서 세 극장 중 가장 큰 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게 됐다. 공연은 아주 미니멀한 무대에서 현대식으로 재해석되었다. 그동안 RSC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봐왔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리고 공연을 해봤던 배우로서는 조금 실망스러운 공연이 아니었나 싶다. 시도는 좋았다고 할 수 있겠지만(어느 공연이든 나쁜 의도로 새로운 시도를 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로미오가 깡패처럼 지나치게 건들거린다거나 머큐쇼를 여배우가 톰보이처럼 연기하는 것, 또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캐플릿가와 몬태규가, 두 가문의 아버지들까지, 전체적으로 다소 미숙한 느낌이 들었다. 배우들이 전반적으로 어린 느낌이 든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극 중 인물들의 나이가 십 대라지만 표현까지 어리게 되다 보니 극이 전반적으로 가벼워졌고, 두 인물의 죽음까지 몰고 가기엔 전체적으로 힘이 부족한 인상을 주었다. 


 

혹시라도 이 극장에서 공연을 보게 된다면, 예매할 때 객석 정보를 잘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2층이나 3층을 받치고 있는 기둥들 때문에 시야제한석이 꽤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극장 곳곳에서 1879년에 문을 열어 2010년 리모델링을 마치고 다시 오픈할 때까지의 오랜 역사와 세월이 느껴졌고, 그런 극장에서 공연을 봤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겐 의미가 있었다. 
 

DAY 2. 이튿날은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계획했던 장소는 모두 여섯 군데였다. 셰익스피어 생가, 메리 아덴의 농장, 앤 해서웨이의 코티지, 셰익스피어의 뉴 플레이스, 홀스 크로프트, 성 트리니티 성당까지, 이렇게 여섯 곳은 꼭 봐야 했다. 이 중 홀리 트리니티 교회를 제외한 다섯 군데는 티켓을 사야 입장이 가능한데, 인터넷에서 다섯 군데를 다 방문할 수 있는 패키지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참고로 이 티켓은 12개월 이내 재사용이 가능하기도 하다. 
 

시내에서 아침 식사 후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시내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셰익스피어 생가였다. 이곳은 말 그대로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곳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지는 이 코티지는 셰익스피어 출생 당시 아버지인 존 셰익스피어가 월세를 내며 살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10년 후 구입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한다. 내부는 박물관답게 16세기의 삶을 그대로 옮겨놨으며,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메카’에 걸맞게 많은 방문자들의 사인이 담긴 예전의 창문 또한 전시되어 있다. 이 창문엔 영국의 유명 작가들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사인도 새겨져 있다. 그렇게 집을 둘러보고 나오면 출구로 이어지는 뒷 정원에선 몇몇의 배우들이 관광객들의 요청을 받아 그 자리에서 셰익스피어 희곡에 나오는 장면 또는 독백을 시연한다. 그때 나는 무척 놀랐다. 그 배우들은 꽤나 실력자들이었고, 그들 중 한 명은 전동휠체어를 탄 몸이 불편한 배우였다. 그들은 실제 공연처럼 열정적으로 시연해 주었고 벤치에 앉아 그 공연을 한동안 관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나와 셰익스피어가 런던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돌아와 구입해 살았던 셰익스피어의 뉴 플레이스로 향했다. 이름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새 집이나 마찬가지인 이곳은 생가보다 훨씬 큰 면적이며 커다란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는 원래의 건축물은 사라지고 셰익스피어의 손주사위가 주인이던 옆집과 더불어 셰익스피어 재단에서 새로 증축한 박물관을 중심으로 관광객에게 오픈을 해놓은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이곳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셰익스피어는 1597년에 이곳을 사들였고, 1616년에 이곳에서 눈을 감은 것으로 전해진다.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들 중 1599년과 1602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햄릿』과 내가 공연했던 적이 있는 1609년 즈음 쓰인 『페리클레스』 또한 여기서 쓰였을 수 있을 거란 것이다. 물론 그가 계속해서 런던을 오가며 작품을 썼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박물관 내부 안내 글귀와 연도표에서 이런 사실을 보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잠시 그 글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와서 라벤더 외 많은 꽃들이 심어져 있는 첫 번째 정원을 거닐다 보면 한 명만이 지나갈 수 있는 작은 통로가 나온다. 이 통로를 지나가면 훨씬 더 큰 정원이 나오는데, 이 정원 곳곳에는 희한한 모양의 조각품들이 자리 잡고 있다. 무엇인가 하고 가까이 다가가니 셰익스피어 작품의 유명한 독백과 그 작품을 상징하는 요소들로 청동 조각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템페스트’, ‘리어왕’, ‘햄릿’, ‘한여름 밤의 꿈’ 등 약 여덟 작품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작품들 속에서 극 중 나오는 요소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꽤나 크다. 그다음으로 향한 장소는 ‘홀스 크로프트’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셰익스피어의 딸 수잔나가 남편인 의사 존 홀 박사와 살던 집이다. 이곳 또한 16세기 영국의 삶과 존 홀 박사의 진료실 등이 전시되어 있다. 중요한 곳은 바로 이다음에 향한 홀리 트리니티 교회였다. 현재 셰익스피어와 그의 아내인 앤과 가족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이 작은 교회 한쪽 구석에 놓인 이들의 무덤을 보기 위해선 소량의 기부 형식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무덤인데 얼마든 기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리고 들어간 그곳에선 마침내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때의 내 기분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던,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던 인물이 피부에 닿을 정도로 가깝게 느껴지는 듯한 초현실주의적인 기분이었다. 난 한동안 말없이 그 무덤을 내려다봤다. 그곳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Good friend for Jesus’ sake forbear, To dig the dust enclosed here. Blessed be the man that spares these stones, And cursed be he that moves my bones(여기 묻힌 유해가 도굴되지 않도록 신의 가호가 있기를. 이 돌무덤을 보존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있을 것이며, 나의 유골을 옮기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으리라).’ 나는 그 가까이에 손을 잠시 내려놓고 속으로 부탁 아닌 부탁을 드렸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 말이다. 그 뒤엔 시간에 쫓겨 급하게 셰익스피어의 아내인 앤 해서웨이의 가족들이 살았던 앤 해서웨이의 코티지와 셰익스피어의 어머니인 메리 아덴이 살았던 메리 아덴의 농장까지 빠르게 둘러보았다. 재밌는 것은 18세이던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결혼식 당일 8세 연상이던 앤 해서웨이를 데리러 오기 위해 시내에서 차로 10분가량 떨어져 있는 집까지 걸어왔을 것이란 사실이다. 그리고 그 둘은 다시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시내로 걸어왔을 것이다. 메리 아덴의 농장은 여전히 여러 종류의 동물들을 키우고 있고,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16세기 영국 복장을 하고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어로 출판되는 셰익스피어 대본들 중 가장 정확하다고 알려진 출판사 또한 아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DAY 3. 스트랫퍼드를 떠나는 마지막 날. 조금 더 오래 머물면서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고 공연도 더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좋은 기운을 받은 느낌이었다. 역사적인 장소들과 항상 글자로 만나고 말로 들었던 사람들이 생활하고 숨 쉬던 곳에 있자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어느 역사적 장소를 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내가 하는 일과 해왔던 일에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인물이 태어나고 눈을 감은 곳, 그의 시작과 끝을 경험하고 있자니, 문득 나의 시작은 어떠했으며 지금의 과정은 어떠하고 앞으로의 끝은 어떠할까라는 질문을 하게 됐다. 이번이 마지막 방문이 아닐 것이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처음은 언제나 강렬한 탓일까. 다음 방문엔 어떠한 경험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시간이야말로 인간의 왕이다. 시간은 인간의 부모이자 무덤이고, 자신이 원하는 건 주면서도, 인간이 원하는 건 주질 않는구나.” (『페리클레스』 2막 3장)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1호 2018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 본 기사와 사진은 “더뮤지컬”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으며 무단 도용, 전재 및 복제, 배포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어길 시에는 민, 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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