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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SPECIAL] 덕후가 세상을 만든다, 인형 만드는 택 [No.181]

글 |안세영 사진 |배임석 사진제공 |택 2018-10-15 6,541

 덕후가 세상을 만든다

공연계 입문자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그 용어, 마니아. 하지만 공연을 향한 마니아들의 사랑과 그 힘으로 완성되는 재능의 크기는 상상을 넘는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공연을 즐겨 온라인상에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명의 마니아와 팬심이라는 위대한 사랑이 낳은 팬아트 11선, <최후진술> 사례를 통해 들여다본 팬들의 열정 어린 메모리북 제작 과정까지. 지금부터 당신을 상상 초월 마니아의 세계로 초대한다.



연극 <알앤제이>의 학생들

인형 만드는 택

택은 공연 캐릭터를 재현한 동물 인형을 만든다. 인형의 애칭은 찌! 바느질은 배운 적 없지만 덕심이라는 사랑의 힘으로 만들었다는 이 찌들은 무대 의상과 헤어스타일까지 섬세하게 구현해 인기다. 선물용, 소장용으로 만들기 시작해 현재는 주문 제작까지 받고 있다. 

공연 캐릭터 인형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5년 <빈센트 반 고흐> 공연 당시 제게 큰 기쁨과 위로를 주었던 공연 팀과 덕친(덕질을 함께하는 친구)분들에게 기념이 될 만한 것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찌 한 마리를 만드는 데 꼬박 며칠이 걸리는 바람에 계획과 달리 배우 한 분께만 겨우 선물하게 됐죠. 같은 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를 만나고 덕심이 불타올라 다시 한 번 나눔에 도전했어요. 일곱 마리를 만들어서 트위터에서 받아가실 분을 추첨한 뒤 현장 나눔을 진행했어요. 그때 이후 제작 요청이 꽤 들어와서 소정의 작업비를 받고 만들기 시작했죠. 수십 마리를 배송하면서 ‘아이구, 별걸 다 해보네’ 했는데 그로부터 2년 10개월째 같은 일을 하고 있네요.

인형 제작 과정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먼저 인형 몸을 만든 다음, 얼굴을 수놓고, 의상을 입혀요. 의상은 도안이 따로 없고 그때마다 대보면서 작업해요. 몸은 공통 도안인데 바느질 해놓고 보면 약간씩 차이가 생겨서 의상 도안을 표준화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한 마리를 완성하는 데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가 걸려요. 하지만 이건 바느질 시간만 계산한 거고 무늬나 장식을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는 시간, 재료를 찾아 구입하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된답니다. 의상 색상과 재질을 최대한 원본에 맞추는 편인데 딱 맞는 원단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또 원단은 최소 1마 기준으로 판매하는데 저는 소량으로 여러 종류가 필요하다보니 원단 구매에 드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어요. 그래서 돌아다니다가 자투리 천이 보이면 무조건 사놓는 버릇이 생겼어요. 



<프랑켄슈타인>의 빅터와 괴물 ⓒ택

가장 반응이 좋았거나 애착이 가는 인형은 무엇인가요?
찌와 배우의 싱크로율이 높을 때 반응이 좋은 편이에요. 배우마다 햄스터, 토끼, 고양이, 곰, 캥거루 등 닮은 동물이 있거든요. 얼굴을 수놓을 때도 배우의 생김새를 고려해요. 눈의 간격, 인중의 길이, 얼굴의 톤 같은 것 말이죠. 얼마 전에는 <프랑켄슈타인>의 전동석, 한지상 배우로 세트 주문이 들어와서 한지상 괴물 특유의 복슬 머리와 두 배우의 키 차이를 반영해 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셨어요.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찌는 <앤ANNE>이에요. 폐막을 코앞에 두고 공연을 봤는데 단번에 사랑에 빠진 거예요. 그날 밤 잠도 안 자고 24시간 작업해 앤 역할 배우세 분께 드릴 찌를 완성했어요. 힘들었지만 앤을 위해 진주 목걸이를 준비한 매슈처럼 행복한 마음이었답니다. 

인형 제작에 따른 고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공연을 보러 가면 옷만 보이는 직업병이 생겼어요. 사진만 봐서는 의상 디테일을 정확히 캐치하기 힘들거든요. <빌리 엘리어트> 윌킨슨 선생님의 코트는 자료만 보고 의상을 만들었는데, 나중에 무대에서 보니 색상이 전혀 달랐어요. 공연을 보면서 ‘엉엉, 선생님 코트 틀렸어’ 하고 울었던 기억이 나요. 이후 작업한 의상은 제가 본 대로 만들어 드렸답니다.



<앤ANNE>의 앤 ⓒ택

인형을 만들면서 겪은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요? 
트위터에 <올모스트 메인> 지방 공연 대기실 사진이 올라왔는데 박란주 배우가 서울 공연 때 받은 찌를 거기까지 챙겨 갔더라고요. 
매 공연 팬들로부터 찌를 선물받는 어떤 배우는 찌 전용 진열장이 있다고 하셨어요. 찌 촬영회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에요. 찌를 데리고 계신 분들이 한날한시에 모여 단체 촬영을 한 거예요. 거의 50마리 정도의 찌가 모였는데 떼로 모아두니 장관이었죠. 그 밖에 찌와 함께 최애극 테마 여행이나 원정 관극을 떠나시는 분, 찌 모임을 열어 공연 장면을 재현하며 즐기시는 분 등 제가 만든 인형을 소중히 여겨 주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하고 기쁩니다. 저는 늘 선물 같은 멘션을 받으며 살아요. 힘들 때마다 보려고 하나하나 캡처해 둔답니다. 

인형 제작과 관련해 앞으로 계획 중인 일이 있나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공연 장면을 재현한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사진도 좋지만 실물이 주는 특별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찌는 떼로 몰려 있을 때 훨씬 귀엽답니다! 모든 게 결과적으로 제 족적을 남기는 일이지요. 이 세상에 제가 살았던 흔적이요.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었다, 덕분에 즐거웠다고 기억되고 싶어요. 



<빌리 엘리어트>의 미세스 윌킨슨과 빌리 ⓒ택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81호 2018년 10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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