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RED) , 캔버스에 새겨진 ‘비극의 탄생’
초연 프로덕션의 귀환
두 사람이 붉은 페인트를 만든다. 그러고서 하얀 색의 커다란 빈 캔버스를 작업대에 건다. 이윽고 둘은 동시에 열정적으로 캔버스를 붉게 칠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때 무대에서 들리는 소리는 조용히 흐르는 클래식 음악과 점점 거칠어지는 두 사람의 숨소리, 페인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뿐이다. 대사는 없다. 마침내 캔버스를 다 칠한 두 사람은 가쁜 숨을 내몰아 쉰다. 둘의 얼굴과 옷은 붉은 페인트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 과정을 목격하는 관객들은 그들과 똑같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흥분을 느낀다.
이미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달의 리뷰 작품은 연극 <레드>이다. 존 로건이 쓰고 마이클 그랜디지가 연출한 <레드>는 이미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된 바 있지만, 개인적으로 큰 애정을 품고 있는 작품이라 웨스트엔드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곧바로 티켓을 예매하고 약 다섯 달을 기다려 왔다. 2009년 런던의 돈마 웨어하우스(Donmar Warehouse)에 올라간 <레드>는 초연 당시 알프레드 몰리나가 로스코를 맡고, 에디 레드메인이 그의 조수 켄으로 출연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2010년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약 3개월간 공연됐는데, 그해 열린 토니어워즈에서 에디 레드메인이 탄 남우조연상을 포함해 여섯 개 부문의 상을 거머쥐는 성과를 이룬다. 브로드웨이 공연 이후 약 8년 만에 돌아온 이번 프로덕션은 에디 레드메인을 제외한 대부분의 초연 멤버들(배우는 물론 스태프까지)이 그대로 참여해 많은 기대를 모았다. 나는 특히 알프레드 몰리나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벅차올랐다.
<레드>의 러닝타임은 약 1시간 30분으로 인터미션 없이 숨 가쁘게 진행된다. 보통의 경우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가량 공연되다 보니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지는데, 몰입감 높은 이야기 때문에 그 짧은 시간이 더욱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 작품은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 마크 로스코가 1958~59년 사이 뉴욕 맨해튼 씨그램 빌딩에 위치한 포 시즌스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를 의뢰받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는데, 벽화 작업을 위해 어시스턴트를 찾던 중 켄을 조수로 고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관객이 객석에 들어서 처음 마주하는 것은 세이프티 커튼(Safety Curtain)으로, 공연 15분 전 커튼이 걷히면 무대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오람이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세밀하게 구현해 놓은 마크 로스코의 스튜디오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는 객석을 등지고 앉아 중앙에 걸린 자신의 그림을 미동도 없이 바라보고 있는 마크 로스코가 있다. 이때 알프레드 몰리나는 앉아 있는 뒷모습만으로도 압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 시작부터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어쩌면 내가 그의 숨소리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빨려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예쁜 그림이 아닌 생각하게 하는 그림을 보여주는 이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레드>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을 듯하다. 먼저 작품의 핵심인 화가 마크 로스코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1903년 러시아에서 ‘마르쿠스 야코블레비치 로스코비츠’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마크 로스코는 1913년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공연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 후반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멀티폼(안개가 낀 것처럼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직사각형의 색면)’이 그의 스타일로 자리 잡은 지 십여 년이 지난 시점으로, 흔히 로스코의 원숙기로 구분되는 이 시기에는 화려한 색상 대신 붉은색이나 갈색, 고동색 등 어두운 색이 주로 사용됐다. 현재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 중인 로스코의 작품들 가운데 두 점은 화려하고 밝은 색상에 조금 복잡한 구조의 직사각형으로 그려져 있는데, 사이즈 면에서도 후기 작품들이 몇 배는 큰 사이즈를 보여준다. 이는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 전시되어 있는 로스코의 작품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유는 로스코가 이 작품들을 그림이 아닌 벽화로 생각하고 작업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레드>에 등장하는 포 시즌스 호텔용 벽화들은 로스코의 요청에 따라 현재 테이트 모던 소장으로 전시되고 있다(일본 가와무라 기념 미술관에 전시된 일곱 점과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에 있는 세 점 또한 씨그램 시리즈에 포함된다). 아홉 점의 작품을 위해 따로 마련된 공간에 들어서면 낮은 조명 아래 전시된 그림들의 압도적인 에너지에 숨이 멎을 정도다. 과장이 아니라, 전시실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아홉 점의 작품을 차례로 보고 있자면 작품이 살아서 숨을 쉰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그림에 빨려 들어가 그 앞에 한없이 앉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참고로 <레드>에 출연 중인 로스코 역의 알프레드 몰리나와 켄 역의 알프레드 이넉도 미술관 측의 협조로 이 공간에서 작품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그럼 이제 마크 로스코를 연기하는 알프레드 몰리나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다. 1953년 런던 패딩턴에서 태어난 이 영국 출신 배우는 지금껏 인디아나 존스의 1편인 <레이더스>,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다빈치 코드> 등 수많은 영화에 출연해 왔지만, 우리나라에는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스파이더맨 2>에서 맡은 닥터 옥타비우스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 않나 싶다. 알프레드 몰리나는 영화 작업 외에도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꾸준히 무대에 서 왔는데, 폭발적인 연기로 마크 로스코에 99퍼센트 가까운 싱크로율을 보여준 <레드>로 특히 많은 박수를 받았다.
여기서 잠시 여담을 이야기하자면, 약 7년 전쯤 미국 UCLA에서 연기 공부를 하고 있던 시절, 3년 과정 중 2학년이었던 우리 클래스에 너무나도 운이 좋게 알프레드 몰리나가 마스터 클래스 수업을 하러 온 적이 있다. 당시 학교 대극장 무대에 올라 알프레드 몰리나 앞에서 독백 또는 장면 발표를 하며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개인 지도를 받듯 연기 수업에 몰두했던 경험은 내게 엄청난 기억으로 남았다. 이번에 <레드> 관람 이후 출연자 출입구 앞에서 그를 기다렸다 만나게 됐는데, 내가 마스터 클래스 이야기를 꺼내자 다행히 그때를 기억한다며 아주 반갑게 맞아주었다. 덕분에 기쁜 마음으로 7년이 흐른 지금 이렇게 또 한 번 큰 가르침을 주어서 고맙다고 감사 인사를 건넸다.
다음으로 언급해야 할 인물은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중인 <레드>와 <이니시모어의 중위(The Lieutenant of Inishmore)>를 연출한 마이클 그랜디지이다. 마이클 그랜디지 연출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돈마 웨어하우스의 예술감독을 맡은 바 있고, 현재는 본인의 이름을 내건 프로덕션 컴퍼니를 세우고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브로드웨이에서는 국내에 <겨울 왕국>으로 소개된 애니메이션 <프로즌>의 뮤지컬 버전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돈마에서의 10년(A Decade at the Donmar)』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는데, 여기서 <레드>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로스코의 스튜디오를 테레빈유 냄새까지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무대디자이너 크리스토퍼 오람은 로스코의 스튜디오 사진을 바탕으로 로스코가 캔버스를 걸기 위해 만들었던 풀리 시스템까지 세세하게 재현해 냈다.” 리허설을 하면서 너무나도 많은 양의 페인트들이 사방으로 튀는 바람에 로스코의 머리를 밀어야겠다고 결정했다는 내용도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마이클 그랜디지는 이러한 결정이 알프레드 몰리나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쳐 그 결과 그가 동물적인 매력을 만들어냈다고 설명하는데, 이처럼 어떤 때는 우연이 작품의 중요한 디테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주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이런 쟁쟁하고 대단한 사람들 사이에서 어리다면 어린 신예인 알프레드 이넉은 켄 역할로서 본인이 해야 할 몫을 단단하게 잘 소화해 낸다. 이제 막 젊은 화가로 활동을 시작한 어시스턴트 켄은 여러 면에서 젊은 세대를 대변하는 듯한 캐릭터인데, 어쩌면 작가 존 로건이 작품을 통해 가장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세대 간의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클래식을 듣는 로스코와 재즈를 듣는 켄. 니체도 읽지 않고 어떻게 예술을 하냐는 로스코와 팝 아트에 흥미를 보이는 켄. 켄은 로스코의 충고를 들으면서도 때때로 로스코에게 충고를 해주는 듯 보인다. 당당하면서도 유약해 보이는,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지닌 젊은 세대 켄의 모습을 알프레드 이넉이라는 배우는 본인의 것으로 소화하며 알프레드 몰리나에 결코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레드>가 끝난 한 시간 후 <레드>는 나에게 또 다른 수업이었다.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특히나 배우로서 하고 싶은 작품 또는 하고 싶은 역할을 보는 것만으로도 값진 경험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알프레드 몰리나와 알프레드 이넉의 연기는 그다음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뭐라 설명이 되지 않는다. 마치 로스코나 켄을 연기한 배우가 아닌 그저 두 사람이 지닌 사상과 열정을 엿본 듯한 기분이었다. 어떠한 것들이 인물을 기울어지게 또는 튀어 오르게 만드는지, 완급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어떤 때에 움직이고 침묵해야 하는지, 이번 <레드>를 통해 새삼 깨달은 것들이 많다.
사상의 충돌. 세대의 충돌.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속내. 결국 공연을 보고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레드>는 누군가에게는 엔터테인먼트이고, 누군가에게는 공부가 될 수 있는 연극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 작품은 예술과 미술계에 빗대어 현시대에서도 있을 법한 세대교체의 어려움과 자본주의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다. 로스코와 켄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 예술가가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 느끼는 불안감이나 지나치게 자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때론 확신이 지나치게 확고해서 오만해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오만함 또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철학으로 설명된다. 두 사람의 불꽃 튀는 대화는 단순한 자존심 싸움이 아닌 지성적인 토론 그 이상을 보여준다. 감정만 앞세우지 않고 동등한 입장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가지고 언성을 높여가며 토론하니 그것마저 열정으로 다가온다. 그 안에서 스스로 고용주임을 강조하는 대가 로스코는 고용인인 새로운 젊은 피에게서 미래를 본 듯하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신세대이며, 그랬던 시절이 지나가며 구세대가 된다. 새로운 세대에게는 어떠한 세상과 사상, 철학을 물려주어야 할까. 아니면 그것을 물려주는 것이 아닌 새로운 세상과 사상, 철학을 발견할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고 영감을 줘야 하는 것일까.
극 중 로스코는 계속해서 말한다. 자신의 그림과 철학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그림이 지닌 가치에 대해 오만할 정도로 자신한다. 그런 그에게 어시스턴트인 켄은 되묻는다. 그렇게 잘난 그림을 대체 왜 레스토랑에 걸려고 하는 것이냐고. 로스코는 자기 그림으로 그 장소를 교회처럼 신성한 곳으로 만들 거라 자신한다. 하지만 켄은 현실을 얘기한다. 과연 로스코는 그 현실을 몰랐을까? 난 당연히 알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지 현실을 직시하고 싶지 않았을 뿐.
레드, 그리고 블랙
이번 글에는 유독 개인적인 감정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횡설수설한 느낌이지만, 이것이 작품을 겪은 나의 감정이기에 숨김없이 썼다. 마이클 그랜디지 연출은 <레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로스코가 그의 어시스턴트와 주고받은 열정적인 대화는 우리를 그 토론의 중심으로 데려간다. 왜 예술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렇듯 <레드>는 표면적으로 로스코와 그의 작품들, 그리고 그의 예술 세계를 중심으로 하면서 작품 깊은 곳에서 우리에게 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극 중 로스코는 이런 말을 한다. “이봐, 인생에서 내가 두려워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건 언젠가 블랙이 레드를 삼켜버릴 거라는 거야.” 어쩌면 나도 언젠가 내 안의 블랙이 내 안의 레드를 삼켜버릴지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 누가 나에게 무엇이 보이냐고 물어본다면, ‘레드’라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9호 2018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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