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어진 입의 미소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 속 주인공 그윈플렌은 귀밑까지 찢어진 입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늘 웃는 얼굴이다. 그런데 이 기이한 입의 이미지가 낯설지 않다. 아마도 당신의 머릿속엔 당장 악당 조커의 얼굴이 떠올랐으리라. 혹은 어린 시절 공포의 대상이었던 ‘빨간 마스크’ 괴담을 떠올리는 이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 이어지며 반복되어 나타나는 이 강렬한 이미지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끔찍한 범죄의 흔적
『웃는 남자』의 배경이 된 17세기 영국은 북아메리카와 인도에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고 상공업을 발전시켜 유럽의 중심 국가로 우뚝 섰다. 풍요롭다 못해 일상이 무료했던 귀족들은 기형적인 외모를 구경거리로 삼는 ‘프릭 쇼(Freak show)’에 빠져들었다. 심지어 기형아를 수집하여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니는 것이 귀족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기형아에 대한 수요가 나날이 늘어나자, 이를 충족하기 위해 ‘콤프라치코스(Comprachicos)’라는 범죄 집단이 생겨났다. 스페인어로 ‘아이 상인’을 의미하는 콤프라치코스는 아이들을 납치해 일부러 기형으로 만든 다음 귀족에게 팔아넘겼다. 이들은 성장기 아이의 관절 마디마디를 꽁꽁 묶고 죽지 않을 만큼의 음식만 제공해 왜소증 환자를 만들었다. 뼈에 물리적인 힘을 가해 몸을 변형시키고, 얼굴에 약을 주입해 망가뜨리는 짓도 서슴지 않았다. 아이들은 외모가 기괴할수록 비싼 값에 팔려나갔다. 이러한 이유로 런던의 빈민촌에서는 무려 50년간 수만 명의 아이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웃는 남자』의 주인공 그윈플렌은 바로 이 콤프라치코스에 납치되어 입이 찢어진 인물이다. 작가 빅토르 위고는 소설 속 그윈플렌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지배층의 탐욕과 빈민층을 상대로 한 인권 유린 행태를 고발했다.
극악무도한 콤프라치코스는 이제 사라졌지만, 날카로운 물건으로 입을 찢어놓는 범죄는 여전히 일어난다. 1920~3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유행하다가 영국 갱단으로 이어진 이 범죄 수법은 귀밑까지 찢긴 상처가 마치 웃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글래스고 스마일’ 혹은 ‘첼시 스마일’이라 불린다. ‘블랙 달리아’는 글래스고 스마일의 유명한 희생양 중 하나다. 그는 1947년 LA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한 무명 여배우로, 발견된 시신은 허리가 두 동강 나고 입이 양쪽으로 찢겨 있었다. 언론은 칠흑 같이 검은 머리카락을 지닌 희생자에게 ‘블랙 달리아’라는 별명까지 붙여가며 사건을 대서특필했지만, 정작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온 도시를 두려움에 떨게 한 이 미제 살인 사건은 훗날 추리 소설과 영화로 옮겨졌다.
조커와 웃는 악당들
『웃는 남자』 속 그윈플렌의 찢어진 입은 만인의 웃음거리가 된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독자는 순수한 영혼을 지녔으나 일그러진 얼굴을 한 그윈플렌의 운명에 눈물짓는다. 하지만 최근 각종 콘텐츠에 등장하는 입 찢어진 캐릭터들은 더 이상 폭소나 연민을 자아내지 않는다. 내면의 악의를 감싼 외면의 미소는 섬뜩한 공포의 이미지로 탈바꿈한다.
대표적인 예가 슈퍼 히어로 배트맨의 숙적 조커다. DC코믹스 <배트맨> 시리즈에 등장하는 악당 조커는 『웃는 남자』의 영향을 받아 탄생했다. 1928년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거장 폴 레니 감독이 『웃는 남자』를 흑백 무성 영화로 만들었는데, 여기서 그윈플렌을 연기한 배우 콘라드 바이트는 입을 양옆으로 늘여 고정하고 과장된 치아 모형을 끼우는 특수 분장을 했다. 이 모습에 영감을 얻은 미국 만화가 밥 케인이 광대처럼 커다랗게 벌어진 입을 가진 악당 조커를 만들어냈다. 조커는 정체가 불분명한 악당인지라 그가 웃는 입을 갖게 된 기원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만화에서는 대개 화학 약품 폐기물 통에 빠져 입 모양이 변형된 것으로 묘사된다.
영화 <판의 미로>에 나오는 악역 비달 대령 역시 영화 중간에 입이 찢어진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장면이 어린 시절 읽은 소설 『웃는 남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비달은 그윈플렌과 달리 뼛속까지 추악한 인물. 감독이 그의 입을 찢어놓은 이유도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비달의 외면이 내면 만큼이나 괴물 같아 보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일본 SF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에도 『웃는 남자』의 영향을 받은 악당이 등장한다. 2024년 한 청년이 생방송 현장에서 유명 기업 사장을 총기로 위협하고 달아난다. 하지만 그가 방송국 전산망을 해킹한 탓에 중계 영상 속 청년의 얼굴엔 웃는 얼굴 그림이 덧씌워진다.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까지 뇌를 해킹당해 청년의 얼굴 대신 웃는 얼굴 그림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 천재 테러리스트는 ‘웃는 남자’라고 불리게 된다. 그림으로 나타난 웃는 얼굴은 끔찍하기는커녕 깜찍한 모습이지만, 웃지 못할 상황에 보게 되는 웃는 얼굴은 악몽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빨간 마스크 괴담
한때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빨간 마스크’ 괴담 또한 이 같은 공포의 이미지를 공유한다. 어둔 밤, 인적이 드문 골목. 마스크를 한 젊은 여성이 지나가는 아이를 붙잡고 이렇게 묻는다. “나 예쁘니?” 아이가 예쁘다고 답하자 여자는 마스크를 벗어 귀밑까지 찢어진 입을 드러낸다. “그럼 너도 똑같이 만들어 줄게.” 1978년 기후 현에서 시작된 이 소문은 곧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었는데, 그 파장이 얼마나 컸던지 초등학교마다 집단 하교를 실시하고, 경찰에서 수사에 나설 정도였다. 1993년 한국으로 건너온 괴담은 ‘빨간 마스크’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 다시 한 번 부활해 큰 인기를 누렸다. 2007년 개봉한 일본 공포 영화 <나고야 살인사건>이 바로 이 괴담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일본을 넘어 한국까지 명성을 떨친 이 입 찢어진 여자의 정체는 뭘까? 괴담이 등장한 19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실마리가 보인다. 그해 일본은 기록적인 꽃가루 현상에 시달리고 있었고, 대다수가 외출 시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침 당시 유행한 화장법이 입술을 크고 빨갛게 칠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마스크를 벗는 순간 드러나는 빨간 입을 두려워한 아이들이 엉뚱한 괴담을 지어냈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한편 1970년대는 일본 여성의 사회 진출이 두드러지고 성형 수술이 보편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성형 수술에 실패한 여성이 아이들 입을 찢고 다닌다는 괴담에는 새롭게 등장한 여성상에 대한 일본 사회의 당혹감과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추측에 신뢰성을 더하는 단서가 있다. 괴담에 따르면 입 찢어진 여자를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음과 같은 주문을 외우는 것이다. ‘포마드, 포마드, 포마드!’ 여자가 포마드 소리에 도망치는 이유는 성형외과 의사가 머리에 바른 포마드 냄새가 너무 역해 수술 도중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입이 찢어졌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숨겨진 맥락이 있다. 1970년대 당시 포마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저씨와 불량배. 즉, 새로운 여성상을 상징하는 입 찢어진 여자를 물리칠 수 있는 건 전통적인 남성상의 상징인 포마드뿐이라는 믿음이 이 같은 주문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8호 2018년 7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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