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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INSIDE THEATER] 이보 반 호프의 작품 세계 [No.176]

글 |배경희 사진 |an Vesweyveld 2018-05-15 5,999

이보 반 호프의 작품 세계
NT Live <강박관념> , <헤다 가블러>




지난 2014년 출발해 국립극장의 간판 프로그램이 된 NT Live 시리즈. 2017-2018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에 선정된 여섯 편의 상영작 가운데, 오는 5월 이보 반 호프의 최신작 <강박관념>과 성공작 <헤다 가블러>가 연달아 상영된다. 



아찔한 탐미주의자
                      
이보 반 호프의 작품 세계를 국내 관객이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은 2012년 LG아트센터에서 올라간 <오프닝 나이트>를 통해서다. 이후 지난해 봄 5년 만에 2014년 네덜란드에서 초연된 <파운틴헤드>로 그가 직접 한국을 찾았는데, 당시 공연 종료 후 로비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 반 호프가 이끄는 토닐 그룹의 본거지인 암스테르담에 가서 그의 공연을 봤으며, 그게 자신에게 어떤 깊은 감동을 남겼는지 사랑 고백에 가까운 경험담을 늘어놓던 한 관객의 들뜬 목소리, 그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물론 그처럼 누군가의 어떤 공연을 보기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는 게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보 반 호프의 공연을 보기 위해 기꺼이 다른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만큼 그가 현재 유럽 연극계에서 잘 나가는 연출가 중 한 명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58년 벨기에 출생으로 암스테르담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연출가. 이보 반 호프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의 최대 특징으로 꼽는 것은 심미적인 무대로, 무대디자이너 겸 조명디자이너인 얀 버스웨이벨드(Janesweyveld)는 그의 무대 미학을 논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다. 반 호프가 하는 모든 작품의 세트와 조명 디자인을 담당하는 버스웨이벨드는 그의 실제 인생 파트너이기도 하다는 사실. 두 사람은 1980년 브뤼셀에서 이십 대를 보내던 중 여름 방학용 현대 무용 수업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이후 40년 가까운 시간을 줄곧 함께해 왔을 만큼 각별한 사이를 자랑한다. 반 호프의 한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들이 바로 세상에 소울 메이트가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1981년 자신이 직접 쓰고 연출한 첫 작품 역시 버스웨이벨드와 함께 만든 작품이다. 버스웨이벨드는 미술을 전공했지만 당시 연극을 하고 싶어 했던 반 호프의 의견을 따라 무대 비주얼을 담당하게 되는데, 외부에 노출되는 공연 사진도 그가 직접 촬영한다. 반 호프는 이후 둘이 함께 설립한 플레미시(네덜란드어를 쓰는 벨기에 북부 플랑드르 지역) 시어터 그룹 AKT와 네덜란드 극단 HZT 등에서 경력을 쌓아가는데, 2001년 토닐 그룹 암스테르담의 예술감독을 맡으면서 이름을 크게 알리기 시작한다. 참고로 레퍼토리 극단인 토닐 그룹 암스테르담은 콘세르트헤보우 오케스트라, 레이크스 박물관과 더불어 암스테르담을 대표한다고 꼽히는 3대 단체다. 그리고 2014년 런던의 영 빅 시어터가 제작한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리바이벌 프로덕션에 연출로 참여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고유명사로 만든다.  

이보 반 호프가 선보인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은 1950년대에 쓰인 아서 밀러의 고전을 현대적으로 강렬하게 재탄생시켰다고 평가받았는데, 그가 이 작품으로 세계적인 반열에 우뚝 선 데는 이 한 작품으로 연극사에 남을 화려한 수상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2015년 영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인 올리비에 어워드 연출상을 손에 넣었을 뿐 아니라, 뉴욕으로 건너간 이듬해엔 미국 공연계 시상식의 양대 산맥인 토니어워즈와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에서 연출상과 최우수 리바이벌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쥔 것. <안티고네>(2015)의 줄리엣 비노쉬, <시련>(2016)의 벤 위쇼. <강박관념>(2017)의 주드 로 등 최근 반 호프의 작품에 출연하는 스타들의 면면만 봐도 그의 현재 입지를 쉽게 가늠할 수 있다(현재 준비 중인 신작 <올 어바웃 이브>의 주인공으로는 일찌감치 케이트 블란쳇이 거론됐는데, 스케줄 문제로 최근 무산됐다). 




<강박관념>

지난 2017년 4월,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서 초연된 연극. 인기 연출가 이보 반 호프의 신작, 각각 자기 도시를 대표하는 토닐 그룹 암스테르담과 바비칸 센터의 첫 공동 프로덕션, 여기에 할리우드 스타 주드 로가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반 호프가 이십 대를 영화관에서 보냈을 만큼 영화광이었다는 것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사실인데, <강박관념>은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적인 영화로 꼽히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1942년 동명 영화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제임스 M. 케인의 소설 『우편배달부는 벨을 두 번 울린다』가 영화의 원작으로 남녀의 불륜과 살인이 기본 플롯. 우연히 만나 금지된 사랑에 빠진 후 비극을 향해가는 커플의 모습을 그린다. 반 호프의 설명에 따르면, 살면서 낯선 누군가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끼는 이유를 우린 결코 알 수 없는데, <강박관념>이 바로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사랑에 대해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분석한 작품이라는 게 런던 언론의 평가였다. 

5월 18, 19, 23, 24, 25일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헤다 가블러>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여겨지는 『인형의 집』(1879)을 쓴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 중 하나로, 1890년에 발표된 이후 오늘날까지 무수히 많은 극단과 연출가에 의해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는 작품. 이보 반 호프 버전의 <헤다 가블러>는 영국을 대표하는 극장 내셔널 시어터가 제작을 맡아 2016년에 초연됐다. 반 호프가 말하는 연출가로서 그의 사명은 다름 아닌 연극을 통해 지금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반추하는 것. 따라서 19세기 중산층 사회를 그린 <헤다 가블러>를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가 택한 방법은 부와 명예를 상징하는 가블러 장군의 딸 헤다를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스스로 만든 감정 감옥에 갇혀 공허함에 시달리는 자기 파괴적 인물로 부각시킨 것이다. 결혼으로 불행해진 페미니스트의 아이콘 헤다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는 것도 이보 반 호프 버전의 흥미로운 점. 지난 2014년 미드 <디 어페어>로 골든 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루스 윌슨의 헤다 가블러 열연 역시 볼만하다.

5월 20, 22, 26, 27일 /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76호 2018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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