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사업 아닌
문화 서비스
지금은 일반적으로 통용되지만 ‘문화 마케팅’이란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굉장히 센세이션했다.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비즈니스적인 용어였는데 문화로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화 마케팅은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했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기업이 문화 후원이나 다양한 문화 관련 프로젝트를 통해 기업의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방식이다. BC카드는 문화 사업을 꾸준히 전개해 온 기업 중 하나이다. 최근에 BC카드는 대학로의 중소극장의 공연 홍보와 마케팅을 지원해서 좋은 작품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 대학로라는 공간이 문화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그곳엔 BC 프로젝트’를 펼친다. 이 사업을 위해 예술경영지원센터와 MOU를 맺기도 했다. 이 사업을 총괄 기획하고 진행하는 BC카드 마케팅 본부의 김진철 상무를 만났다.
그곳엔 BC 프로젝트의 출발
김진철 상무는 BC카드 문화 기업으로 인식되는데 기초를 다진 장본인이다. 2006년 BC라운지를 시작한 이가 바로 김진철 상무였다. BC라운지는 BC카드의 모든 문화 사업을 고객들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만든 채널이다. 이후 BC카드의 문화 사업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서 지금의 ‘그곳엔 BC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처음 BC카드에서 문화 사업을 시도한 이유는 이랬다. “고객들에게 혜택을 주려고 살펴보니 소비자들이 문화에 대한 욕구가 많다는 것을 여러 데이터를 통해 확인했어요. 다른 기업에서 주로 하는 방식이 공연 할인인데 단기간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적으로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공연 관람 욕구는 크지만 가격 장벽이 있어서 공연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가 많거든요. 그래서 부담 없이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만 원의 행복’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김진철 상무는 대한민국 평균 중장년들이 그렇듯 이 사업을 맡기 전에 공연이나 문화와는 인연이 없었다. BC라운지로 묶이는 문화 서비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공연 관계자들과 6개월 정도 토론을 하며 공연계 상황과 관객들의 요구를 살피는 등 공연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했다. 이 프로그램들의 고객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이런 고민과 노력의 결과였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는 그가 지난해 다시 마케팅 본부로 돌아왔다.
그래서 선보인 프로그램이 ‘그곳엔 BC 프로젝트’이다. 대학로 지역의 우수 중소극장 작품의 홍보, 마케팅을 지원하고 대학로를 좀 더 문화가 느껴지는 장소로 만들자는 프로젝트이다. 일단 민간 기업이 나서 역사와 문화가 있는 특정 장소를 활성화하는 데 지원한다는 생각이 신선했다. “BC카드 내부적으로 본다면 젊은 층에 대한 호소력이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마케팅 프로그램이 필요했죠. 대학로는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고 연극이라는 예술 형태가 집약된 장소잖아요. 소비자에게 집중적으로 인식되고 경험이 되는 공간 마케팅 차원에서 대학로를 선택했어요.” 대학로를 선택한 이후 제작 환경이 열악한 중소극장 작품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가장 도움이 필요한 것이 제작비였고, 그다음이 홍보, 마케팅비였다. 대학로 공연이 활성화되고 촉진되기 위해 그 비용을 예술경영지원센터를 통해 지원하기로 했다.
김진철 상무의 생각은 간단했다. 대학로의 작품들이 관객들과 좀 더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서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는다면, 제작사는 좀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고, 이것이 다시 관객들을 대학로로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곳엔 BC 프로젝트’는 공연장에 그치지 않고 대학로가 좀 더 문화가 흐르는 공간이 되기 위해 공간 활성화 활동도 병행한다. 공연 광고 전광판을 디지털화해서 편리하고 시각적으로도 세련되게 바꾸는 작업뿐만 아니라, 마로니에 공원의 낙후된 야외무대를 개·보수해서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재능을 뽐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은 민간 기업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홍보, 마케팅 지원 사업은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함께하고, 대학로 활성화 사업은 종로구청과 힘을 합쳤다.
문화, 고객들이 원하는 서비스
BC카드로서는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자하는 일이다. 문화 사업이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지만 객관적인 효과나 지표를 확보하기 힘들다. 그런 이유로 문화 담당자는 그것이 막연할지라도 자신만의 성공 기준을 세우기도 한다. 김진철 상무에게 이 사업의 성공 기준이 무엇이냐고 우문을 던졌다.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와야만 성공이라는 기준은 있지만 그것을 판단하기에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일단은 우리가 구상한 메커니즘이 구현되어서 제대로 돌아가면 된다고 봐요. 기획한 대로 작동하고 프로그램이 풍성해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문화 사업에 성공의 잣대를 들이대면 사실 할 수 없어요.” 많은 기업들의 문화 사업이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기업의 생리가 영리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객관화할 수 있는 수치나 성과로 확인되지 않으면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없고 그래서 문화 사업이 어느 단계에 이르기 전에 서둘러 끝나고 만다. 김진철 상무의 대답을 들으니 적어도 ‘그곳엔 BC 프로젝트’가 앞선 이유로 중단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직 프로그램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래의 기대를 묻는 것이 성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준비한 질문이었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진철 상무는 기대 이상의 계획을 품고 있었다. “종로구청도 대학로를 문화의 거리, 젊은 아티스트의 공연이 활성화된 거리로 발전시키고 싶은 계획이 있다고 해요. 문화를 자유롭게 즐기는 공간으로 대학로 지역을 발전시킨다면 어떤 모습일까 상상을 했어요. 다른 나라에서 이렇게 밀접한 공간에 공연장이 들어선 곳이 있나 조사해 보라고 했죠. 10월에 아트마켓이 열린다고 해요. 이를 확장시켜서 대학로가 일정 기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극을 볼 수 있는 공간, 일종의 페스티벌 형태로 발전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참여하는 팀이나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내공과 품격이 있어야 할 거예요. 짧은 기간에 되지는 않을 일이죠. 이런 뜻에 공감하는 기업 두세 곳이 참여해 힘을 합치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의 꿈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화 사업이 궁극적으로 기업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저희가 하는 일은 문화 사업은 아니라고 봐요. 문화 ‘사업’이라고 하면 수익이 나야 하거든요. 그것도 당장. 그렇지 않다면 가까운 시일 내에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조건이 붙어야 하죠. 저는 이 일을 고객들에게 혜택을 주는 문화 서비스라고 생각해요. 문화 영역에서 BC카드가 다른 기업과 차별화된 활동이라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죠. 분명한 건 고객들은 문화 활동 욕구가 있고, 문화생활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는 거예요. 무엇보다도 고객들이 좋아해요.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니까 관련 서비스를 늘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요. 담당자가 바뀌더라도 지속될 수 있는 이유죠.” 김진철 상무가 10여 년 전 문화 마케팅을 시작하고, 10여 년이 지난 후에 같은 업무로 복귀해서 그 일을 지속,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회사 내부에서 바로 이러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67호 2017년 8월호 게재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