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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슴슴한 ‘심야식당’ 레서피의 맛 <심야식당> [No.112]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컴퍼니다 2013-01-08 4,334

추억이 ‘맛’있는 이유

 

기억이 추억으로 익어가는 데 필요한 것이 단지 시간만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때때로 상처라는 이름으로 남기도 하는 법. 하지만 추억은 아름다워진 기억이다. 기억이 시간의 숙성을 통과하면서 아름다움과 만날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결과물이 바로 추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추억을 품은 이들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경험한 사람들인 셈이다. 현실의 신산함 속에서 뭉근하게 빚어낸 기억을 아름다움으로 품은 사람들. 그러기에 추억은 힘이 있다. 지금의 신산한 삶이 시간을 통과하면서 또 하나의 추억으로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소망은 단지 현실을 견디게 하는 정서적 속임수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추억의 장소는 과거이지만 기억을 추억으로 익혀내는 아름다움의 기원은 ‘지금 여기의 나’로부터 비롯된다.


사람들의 추억을 음식의 맛에 버무려 이야기로 풀어내는 아베 야로의 만화 <심야식당>은 인생이란 곧 추억을 품는 일임을,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일임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왜 하필 ‘심야식당’일까? 본래 아름다움(美)은 맛(味)의 개념과 기원을 같이 한다. 맛을 음미한다는 것은 사람이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사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시작점이다. ‘필요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경험함으로써 삶의 본질은 ‘생존’을 넘어서 ‘행복’에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은 인간에게 필수품이 되었다. 그러니까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이 사는 삶을 행복하다고 볼 수는 없는 거다. 밥 먹을 새도 없이 일해야 겨우 밥을 먹을 수 있는 사회도 건강한 세상은 아니다. 먹고 살게 해주면 되지 뭘 더 바라느냐는 말은 견딜 수 없이 무례하다.

 

이런 무례함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오직 나만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주는 식당이 있다면. 그것도 늦은 밤에. 이런 곳에서는 아무리 깊은 이야기라도 꺼내놓지 않을 재간이 없다. 이 식당의 음식은 단순히 먹기 위한 것이 아니다. 마스터가 빚어내는 맛은 사람들을 추억으로 이끄는 따뜻한 온기이자 마음을 털어놓는 이야기의 촉매인 셈이다. 만화를 아직 안 보신 분이 있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날씨도 마음도 추운 이때 딱 제격이다.

 

 

연극 같은 뮤지컬, <심야식당>

 

만화를 장르 이동시킨 뮤지컬 <심야식당>도 원작의 결을 그대로 이어받는다. 여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추억의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각자 같은 음식만을 주문한다. 물론 매번 남자를 바꿀 때마다 음식도 바꾸면서 영원한 현재형의 연애를 꿈꾸는 스트리퍼가 있긴 하지만, 담아둘 기억을 만들지 않는 그녀의 사랑은 어쩌면 추억이 될 사랑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를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게이, 꿈을 이룬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에게 추억이 되어버린 엔카 가수, 사람들에게 보이는 화려함 속에서 아직도 자기를 잡아매는 아빠와의 기억을 아프게 붙잡는 소녀 등 이 작품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매번 자신의 추억이 담긴 맛을 주문한다. 그들이 풀어내는 사연이 이 작품의 맛이다.


이런 사연은 그리 특별하진 않지만 오히려 평범하기 때문에 끌어내는 공감이 있다. 짜릿하도록 각인되지는 않지만 시종일관 편안하게 들리는 음악의 정서도 작품의 공감대를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작품의 처음과 끝을 알리는 ‘심야식당’을 듣고 있노라면 냉골에 전기장판 켠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진다.    

 

작품이 자아내는 첫인상은 여러모로 뮤지컬보다는 연극에 더 가까워 보인다. 일례로 일본의 뒷골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아기자기하고 오밀조밀한 무대는 주방 찬장의 나무 질감까지도 보일 정도로 세밀하게 꾸며져 있다. 이런 무대를 보는 재미는 조명과 이미지로 채워진 여타의 무대를 볼 때와는 또 다른 맛이다. 이 작품이 배경을 한국화 시키지 않고 그대로 일본의 것을 선택했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 생각해보면 평범한 일본의 소시민을 주인공 삼은 많은 연극의 무대도 이와 비슷했더랬다.

 

게다가 배우들의 면면도 예사롭지 않다. 송영창과 박지일, 그리고 서현철은 연극 좀 보신 관객들은 대번 알아차릴 중견배우들이다. 이들이 극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는 건 이 작품의 정체성이 뮤지컬다움보다는 연극다움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빙빙 돌리지 않고 그냥 말하자면, 이 작품에서 노래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겠다는 사실. 대신 노래의 빈틈을 메우고도 남을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가 있으니 많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라는 기대. 기타 등등.

이러한 설정은 작품의 성격에 맞는 적절한 배치이다. 사람들이 잠든 시간에 혼자서 식당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고백에 가까울 수밖에 없는 법. 노래와 대사를 통해 말해지는 것과 말하지 않음으로써 볼 수 있는 것을 모두 담아낼 때 이 작품의 미덕은 빛을 발할 거다.

 

감칠맛이 필요하다!

 

그런데 말이다. 이 작품이 따뜻한 것도 알겠고 음악이나 무대도 정감 있고 배우들의 연기도 나쁘지 않은데 말이다. 솔직히 확 끌리는 재미나 감동은 그다지 크지 않다. 아, 내가 메마른 걸까. 감동적인 이야기 꽤나 좋아하는데 왜 이 작품의 정서에 동의하는 만큼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 걸까. 일단 극장의 크기가 작품의 정서와 잘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작품의 시공간이 내밀한 만큼, 시각적 거리감보다는 공감의 거리감을 확보해야 하는 만큼, 그리고 여러모로 연극적인 설정이 많은 만큼, 관객과의 거리가 좀 더 가까운 소극장이라면 이 작품이 더 와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누구 말을 듣자니 무대 위의 음식냄새가 솔솔 객석까지 온다던데, 이건 뭐 돼지갈비를 연기 나게 태워야 냄새 한 번 맡아볼 정도로 거리가 멀더라. 후각을 통해 추억의 맛에 동참하기엔 애당초 어울리지 않는 크기의 공간인 셈이다.

 

 

원작의 에피소드를 극적인 구성으로 엮는 일도 쉽지는 않다. 만화는 호흡이 길기에 각자의 사연을 독립적으로 끌고 갈 수 있지만 뮤지컬이라는 시공간의 한계 속에서 이를 하나로 엮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뮤지컬 <심야식당>은 그러한 문제를 극복하고자 마스터와 타다시, 코스즈 등의 인물을 ‘말하는 이’로 설정했다. 이들이 식당 안에서 기본적인 관계를 설정하면 이 설정의 틀 안으로 각각의 인물들이 뛰어든다. 이러한 극적 장치를 통해 각각의 사연을 단순나열식의 지루함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도였을 거다. 하지만 그러기에 이들 중심인물을 엮는 연결고리는 너무 약하다. 그저 뻔질나게 식당을 드나드는 것 외에 이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극적 동기는 따로 없다.


사람들의 사연이 소개되는 방식도 다소 반복적이면서 설명적이다.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똑같은 음식을 시킨다. 그리고는 조용히 사라진다. 그러면 식당 안에 있는 누군가가 묻는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에요. 그러면 마스터가 됐든 타다시가 됐든 그 사람의 사연을 설명한다. 설명의 방식도 비슷하고 노래가 개입하는 타이밍도 비슷하다. 조금 다르게 설명하는 방식이 있긴 있다. 그건 바로 회상. 말하는 이가 과거를 회상하면 무대 전면에서 그 사연이 재현된다. 그리고 첨가되는 부연설명. 누군가 고백과 회상의 노래를 부를 때마다 마스터를 비롯한 무대 위 사람들은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저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다. 그 모습이 고즈넉해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극적인 흐름이 멈춘 것처럼 보인다는 게 문제겠지만.

 

설명과 회상이 많아지면서 이 작품의 따뜻한 정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이 되어버린다. 결과가 원인으로 자리를 바꾼 셈이다. 그렇게 되면 작품은 자칫 극적 논리를 따라가기에 앞서 정서의 과잉에 빠질 우려가 있다. 따뜻한 감동은 작품을 본 관객이 가져가야 할 몫이고 결과이다. 『슬램덩크』의 강백호가 남긴 명대사가 기억난다. ‘왼손은 그저 거들 뿐.’ 작품은 그저 보여줄 뿐.

 

뮤지컬 <심야식당>은 오래될수록 깊은 맛으로 숙성될 작품이다. 좀 더 뮤지컬다워지든지 아님 좀 더 연극적이 되든지 어느 길로 가도 상관은 없겠다. 하지만 지금으로는 심심하고 헐겁다. 더 나은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할 터. 그 시행착오를 도모해도 괜찮을 만큼 <심야식당>의 기본은 탄탄하다. 그러니까 이 식당에는 더 나은 맛을 기대해도 된다 이 말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12호 2013년 1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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