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바의 청춘들
하정우, 윤계상 주연의 영화 <비스티 보이즈>가 크리에이티브 마인즈 리딩 공연으로 소개됐다. 원작은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청년들의 쓸쓸한 내면을 실감나게 그려냈다는 평을 받은 영화다. 뮤지컬에서는 기본 정서와 스토리는 유지했지만 하정우가 맡았던 재헌 대신 승우를 전면에 내세웠다. <비스티 보이즈>로 제작 피디에서 작가로 입문한 이헌재 작가와,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해왔지만 뮤지컬 작곡은 이 작품이 처음인 홍정의 작곡가를 만났다.
* CJ 크리에이티브 마인즈는 신인 뮤지컬 창작자들에게 작품 개발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선보이는 프로그램입니다.
작품 소개
청담동 최고의 호스트바 비스티 보이즈. 이 가게의 젊은 지배인 재헌은 웨이터로 일하는 승우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이곳의 에이스로 키운다. 1년 동안만 돈을 모으기 위해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승우. 재헌은 도박 빚이 점점 늘어가자 자신에게 수입을 올려주는 승우를 잡아두기 위해 지원을 이용해 공사(사기)에 들어간다. 승우에게 접근해 거짓 사랑을 고백하는 지원은 점점 승우의 순수함에 빠져들게 되는데…
기획자로 작품을 대하다가 작가로 작품을 접할 때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
이헌재 피디로 봤을 때 이 작품은 비교적 뮤지컬로 만들기 쉬운 소재라고 생각했다. 등장인물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춰야 하니까 원작을 어떻게 뮤지컬로 각색할지 기술적인 고민을 해야 했는데, 작가의 입장에 서게 되니까 그보다는 무엇을 이야기할지, 인물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진정성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더라. 그런 고민이 깊어지다보니까 창작 과정이 좀 더 수월해졌다.
극 음악뿐만 아니라 다양한 음악 활동을 했다. 그러나 뮤지컬은 처음이다. 작업해본 소감은?
홍정의 내 작업 중에 가장 대중과 가깝게 맞닿을 수 있는 작업이어서 흥미를 느꼈고 재미있었다. 돌려 표현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되고, 다 보여주고 솔직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가사의 어감을 음악에 잘 얹혀서 음악이 쉽게 잘 들어왔다.
홍정의 가사 있는 곡 쓰기를 좋아한다. 노래를 좋아하는데 글이 음으로 되어 나오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가사가 노래가 되었을 때 그것을 처음으로 만나는 사람이 나라는 것이 즐겁다. 작가 중에는 가사를 다 써주시는 분도 있고, 대화만 주시는 분도 있고 지문만 주시는 분이 있는데, 그 대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감성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한다. 이헌재 작가가 그런 감성을 잘 제시해주었다.
이전 인터뷰에서 이번 작업은 다음 작가에게 넘기기 위한 선행 작업이라고 했다. 그 생각은 여전한가?
이헌재 초고를 쓸 때만 해도 피디로서 쓰려고 했다. 무협 스타일로 시작해서 이 부분에 노래가 나오고 등등 구성만 해두려고 했다. 다른 작가가 들어와도 정해놓은 구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작가로서 이 작품이 내 새끼 같은 느낌이 든다. 다른 작가가 들어오면 바꾸려고 할 텐데 그걸 못 볼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계속 작가로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90퍼센트이다. 드라마터그, 다른 각색 작가나, 아니면 연출 등의 도움을 받아서 계속 작가로 작업하고 싶다.
이번 리딩 공연에서는 간단한 밴드 구성으로 꾸몄는데, 아쉬운 점은 없었나?
홍정의 애초 대본을 받자마자 가졌던 생각은 이 작품은 MR로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뮤지컬에서 라이브 밴드가 모든 노래를 같은 톤과 색깔로 연주하는 것을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보통 뮤지컬 작업에서 라이브 밴드가 연주에 참여하는 방식으로는 좋은 편곡이나 음악적 퀄리티를 보장받기가 힘들다. 그래서 MR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발라드는 풀로 갖춰진 현악기 연주가 들어온다든지, 어쿠스틱 발라드가 아니더라도 팝 발라드나, 알앤비 발라드라든지 특수하고 팝적인 느낌을 내고 싶었다. 댄스 때는 아이돌 댄스 음악으로 구성해놨는데, 라이브 밴드로 가야 해서 그에 맞게 다시 편곡해야 했다. 이번에 밴드와 작업하면서 라이브의 힘을 느꼈지만 밴드로 가려면 좀 더 때깔 나게 갈 수 있는 편성을 하고 싶다. 일렉트로닉한 느낌을 활용하고 싶고 디제잉을 이용한다든가 사운드에도 좀 더 신경 쓰고 싶다.
리딩 과정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이헌재 영화를 전공했는데 스물네 살에 영화의 꿈을 접었다. 영화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영화감독의 중요한 덕목이 비즈니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작업을 하면서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라는 걸 느꼈다. 처음 문화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했던 순수한 시기로 돌아간 것 같다. 진정성이나 순수한 열정이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만들어준다고 본다. 나머지는 연출이나 피디들이 도와주지 않겠나. 작가의 꿈을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점이 가장 크게 얻은 것이다.
홍정의 순수예술에서의 작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뮤지컬 작업에서는 프로덕션을 완성하기 위해 작가와 작곡가가 쓰인다. 그런 상황이 낯설기도 하면서 흥미로웠다. 나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호스트바에서의 대화가 리얼하게 다가왔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리얼한 대사가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헌재 쓸 때는 못 느꼈다. 혼잣말하면서 쓰다 보니까 욕을 좀 줄인 면도 있다. 그런데 리딩 공연을 객석에서 지켜보면서 움찔움찔했다. 여성에 대한 비하 발언이 되게 많았다. 여성을 심하게 부정적으로 표현한 게 많이 거슬렸다. 지금 고민은 그 밸런스를 어떻게 맞추느냐 하는 것이다. 여성 비하적인 발언이 관객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은 피디 입장에서의 고민이다. 그러나 작가로서는 그 상황에서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일단은 피디 입장에서의 고민은 덜 하려고 한다. 관객의 배려는 나를 컨트롤해 줄 피디에게 맞기고 싶다.
특별히 작곡하기 힘든 곡이 있었나?
홍정의 그런 것은 없었다. 음악극이나 연극 음악을 만들 때 엔딩곡은 장면을 보고 만들고 싶어한다. 이번 경우는 모든 일정이 늦은 관계로 엔딩곡을 상상해서 이미지로만 썼는데 그게 좀 힘들었다.
리딩 공연에서는 각 장마다 변화를 해설자에게 맡겼는데 장마다 간격이 컸다. 이를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
이헌재 기본적인 무대 상황이나 메커니즘은 작가가 고려해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요 공간이 호스트바나 대기실인데 소파로 이루어진 공간이니까 간단한 장치로 변환시킬 수 있을 것이다. 외부 공간들은 간단한 소품들로 상징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간을 좀 더 다양하게 꾸미고 싶다. 리딩에서는 선수들이 대기실에서 카드 치는 것만 반복했는데,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면서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미용실도 매력적인 공간이다. 출근하기 전에 미용실에서 나누는 선수들 간의 대화나, 미용사와의 대화를 통해 리딩에서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들을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재헌이 중심에 섰지만 뮤지컬은 승우가 주인공이다. 재헌은 입체적인 인물로 매력이 있는데 승우는 수동적인 인물이다보니 재미가 덜하다.
이헌재 그 부분에 고민이 많다. 재헌의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매력적이다. 재헌을 부각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많이 들었는데, 승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어렵긴 하다. 재헌은 일관된 캐릭터로 사건에 따라 밖으로 표출되는 모습이 다양하다. 반면 승우는 내면이 계속 변하는 캐릭터이다. 승우를 잘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지만 리딩에서는 충분히 해결하지 못했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주요 인물 이외에도 호스트바에서 일하는 삼총사에게서 화려하고 과시적이지만 쓸쓸한 내면들이 언뜻 보이는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
이헌재 트리트먼트를 제출할 당시에는 미친놈, 민, 장동건 캐릭터가 없었다. 김태형 연출과 작곡가님을 만나러 가다가 이런저런 주변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그중에 강간 혐의로 신고당한 주위 사람의 일화를 이야기했더니 그걸 작품에 대입했다. 물론 분량이 적지만 세 호스트바 선수들에게 너희는 이런 인물이라고 스토리를 부여해주었던 것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
내년에 이미 공연이 잡혔다고 들었다. 그 공연을 미리 소개해준다면
홍정의 라이브 밴드가 내가 원하는 사운드를 소화해낼 수 있으면 좋겠고, 작가님의 초심이 발휘되었으면 좋겠다. 처음 대본을 들고 왔을 때 이 작품 죽이는 거라고, 진짜 야하게 놀 수 있다고 했다. 대충 눈치 보는 거 말고, 확 끝까지 가는 그런 작품을 해보고 싶다. 쇼적인 장면에서는 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열광적으로 놀 수 있는 분위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이헌재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는 훨씬 더 화려해질 것이고 드라마적으로는 비장하다고 해야 할까. 진정성이 느껴지도록 더 진지하게 접근할 것이다. 화려하고 세련되게 가야지 이들의 비극이 상대적으로 더 잘 전달될 것이다. 내면 자체는 더 쓸쓸하고 외롭게 만들어내고 싶다.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 110호 2012년 11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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