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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컬처 | [리뷰] <늑대의 유혹> 늑대가 한류라면, 한류(韓流)? 한류(寒流)? 항류(恒流)? [No.95]

글 |정수연(한양대 연극영화학과 겸임교수) 사진제공 |PMC프러덕션 2011-08-08 5,055

격세지감이다. 한국의 아이돌들이 파리에서 공연을 하다니. 게다가 유럽 관객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연장 공연까지 했단다. 유행어를 빌려 말하자면 우리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해외 팝스타가 내한하면 얼굴 한번 보려고 깔려 죽을 각오를 하고 뛰어다녔던 청소년기를 보낸 입장에서는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한류가 있기는 있나보네. 그러니까 <늑대의 유혹>이 한류 뮤지컬을 표방한 것은 잘한 일이다. 우리의 취향이 다른 이들의 그것과 만날 수 있음을 도처에서 확인하는 이때, 그 공통의 코드를 파고들어야 하지 않겠나. 한국 아이돌 음악이 유럽에서도 먹히는 걸 보고서도 이 먹음직한 재료를 그대로 두는 건 유능한 기획자의 덕목이 아닌 게다. 애매모호한 작품성 운운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기획력을 앞세운 상품성을 추구하는 것이 작품을 더욱 명쾌하게 만들어내는 동력이 되기도 하는 법.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하지만, 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알고 가는 사람의 앞모습도 그에 못잖게 멋있다.

 


그렇다면 <늑대의 유혹>은 가야 할 길을 어디로 잡았을까. 한류의 길에도 여러 갈래가 있으니, 욘사마가 걸어가신 독보적 스타의 길이 있고 장금이가 개척한 탄탄한 콘텐츠의 길도 있으며 케이팝이 열어젖힌 화려한 퍼포먼스의 길도 있다. <늑대의 유혹>은 애초부터 아이돌 음악을 주재료로 삼은 한류 뮤지컬을 표방했으니 이 작품이 선택한 한류의 길은 명확해 보인다. 아이돌 음악의 역동적인 무대와 보기에 끝내주는 퍼포먼스를 관객의 기대에 맞게 만들어내는 것, 바로 케이팝의 길이다. 이 작품에는 동방신기를 비롯해 2PM, 샤이니, 카라 등등의 노래가 등장한다. 여러 가수의 히트곡을 한꺼번에 듣는 재미야말로 주크박스 뮤지컬의 가장 큰 즐거움일 게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에너지 넘치는 젊은 배우들이 펼치는 군무는 적잖이 볼 만하고, 가창력이 가미된 노래도 듣는 재미가 있다. 그런데 말이다. 무대 위의 노래를 보고 들으면서 알겠는 거다. 아이돌 음악은 단순히 노래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이돌 자체의 아우라와 그들의 퍼포먼스 전체를 통칭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난 너무 예뻐’라는 노래가 귀에 들어왔던 건 샤이니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시아가 됐건 유럽이 됐건 케이팝을 찾는 한류 팬들이 원하는 건 ‘음악’뿐만 아니라 ‘그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뮤지컬에서는 오로지 ‘음악’만을 차용했을 뿐이다. 한류  작전, 문제가 생겼다.


이 빈틈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음악에 정면 승부를 거는 것이다. 아이돌 음악을 새롭게 재창조하거나 재해석해내는, 음악적 완성도로 친숙함에 균열을 내는 방법. 멋지지 않나. ‘나는 가수다’에서 이소라가 보아의 ‘넘버원’을 불렀을 때 사람들은 이소라를 재발견함과 동시에 ‘넘버원’이라는 노래에 다시 주목했다. 발랄 상쾌하기만 했던 아이돌의 음악 속에서 무거운 진동으로 변주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던 거다. 새로움을 경험한 대중은 음악에도, 가수에도 열광했다. 그런 발견을 <늑대의 유혹>에서 기대해도 될까. 아쉽게도 이번엔 아니다. 뮤지컬의 문법으로 편곡되었다는 아이돌 음악은 익숙한 평이함을 넘어서지 못했으니 무대 위의 노래를 보고 들으면서 원곡의 강렬함이 그리워졌던 건 나뿐만이 아닐 게다.

 


음악적 방법으로 아이돌의 부재를 메우지 못했다면 남은 대안은 하나다. 그건 콘텐츠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름 하여 장금이의 길. <대장금>이 아시아를 넘어 중동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저력에는 탄탄한 이야기가 있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옳음을 추구하는 사람이 고난을 통해 성장해 가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설득력을 갖게 마련. 드라마의 보편성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콘텐츠야말로 한류를 유지하는 진짜배기 메뉴일지도 모른다. 한류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취향의 쏠림이라는 것은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유행이고 한때의 관심일 뿐이다. 그 시간의 변덕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당대의 취향에 매몰되지 않는 보편성에 있는 것이다. 이야기는, 시간을 넘나드는 생명력의 보고이다.


그런데 말이다. 장금이의 길을 따라가기에 <늑대의 유혹>이라는 텍스트가 적절한지, 그리고 그 대본을 각색이라는 과정을 통해 잘 다듬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삼각관계나 조폭의 배신은 그렇다 쳐도, 출생의 비밀에서 시작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알고 보니 누나였더라,를 거쳐 주인공의 불치병까지 오게 되면 이 작품을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민망해진다. 물론 대중적인 이야기라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만 그래도 모든 사건과 관계는 나름의 이유로 연결되어야 하고 문체가 됐건 스타일이 됐건 그 이야기만의 개성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게 이야기를 다듬는 이들이 독자에게 또는 관객에게 갖추어야 할 예의이다. 영화를 통해 흥행성이 검증된 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 흥행성의 토대가 강동원의 미소였는지 귀여니의 필력이었는지 잘 생각해봤어야 했다.


오리무중이다. 한류 뮤지컬 <늑대의 유혹>은 도대체 누굴 유혹하러 어느 길로 가고 있는 거냐. 있는 소설에 있는 노래에 적당히 가사 바꾸고 적당히 이야기에 맞물려 놨으니 다 됐다는 식이다. 이걸 창작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창작이라면 모름지기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PMC의 전작인 <달고나>나 <젊음의 행진>은 완성도 높은 스토리에 대중가요를 적절히 배치시킴으로써 주크박스 뮤지컬의 모델을 만들어냈더랬다. 여기에 비하자면 <늑대의 유혹>은 퇴행이다. 이야기의 창작에서도, 음악의 활용에서도.

 


그래도 이 작품은 당당할 것이다. 공연 초반인데도 객석도 꽉꽉 차고 관객의 반응도 나쁘지 않으니 말이다. 관객이 좋아하는 작품은 그 나름대로 명백한 존재 의미를 갖는 법이니만큼 이 작품이 자신감을 갖는다 해도 굳이 맘 상하진 않으련다. 하지만 그 호응이 끝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장담 못 하겠다. 관객은 살 떨리게 유치한 농담이나 배우들의 개인기에도 호응하지만 적어도 1막의 무대에 그들이 반응했던 이유는 이 민망한 전형의 코드를 스스로 희화화하는, 무대의 자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기 때문이다. 2막의 억지스런 설정에 터져 나온 객석의 실소나 뜬금없는 결말에 의아해하던 관객의 헛웃음을 간과한다면 아무리 멋진 늑대 녀석들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관객을 치명적으로 유혹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거다.


그렇다고 한류의 길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 어쩌면 벌써부터 이 작품은 더 유서 깊은 한류의 길을 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욘사마보다도 훨씬 이전에 이미 세계의 방방곡곡에 스며들어 세계인을 사로잡았던 신라면의 길. 이것저것 넣을 필요도 없이 끓는 물만 있으면 간편하게 한 끼니가 되고 혀에 착 달라붙는 조미료의 감칠맛으로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아 뭉근한 사랑을 받고 있으니 라면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싼 왈가왈부가 아무리 많아도 끄떡없이 한류의 자존심을 지키는 거다. 그러니까 영양의 관점에서 부족한 걸 인정하고, 설렁탕의 영양을 그대로 재연했다는 신라면블랙의 과장 광고를 경계하면서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다양한 맛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 간식으로는 훌륭해도 주식은 될 수 없는 것이 라면의 운명이라면, 그 운명을 극복하겠다는 결기를 품으라는 거다. 전복이 들어갈 수도, 갈비가 얹어질 수도 있는 라면의 가능성. 지금으로선 유명 아이돌 캐스팅을 토핑으로 올리는 게 작품을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어쩌면 유일한 길이겠지만 시간을 두고 계속 매만지면 제품 자체가 개선될 수 있는 법이니, <늑대의 유혹>도 그렇듯 완성도를 높여나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한 번 치고 빠지는 기획상품이 되기보단 긴 시간 지속적으로 사랑받는 스테디셀러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늑대의 유혹>이 추구하는 한류(韓流)가 한류(寒流)가 될지 항류(恒流)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 어이, 늑대 녀석들. 가서 엄마 젖 더 먹고 커서 오렴. 니들의 유혹에 넘어갈지 말지는 그때 가서 생각해 보자고.

 

※외부 필자의 기고는 <더뮤지컬>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5호 2011년 8월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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